아침에 일어나니 태풍은 물러갔다. 카눈 때문에 지난밤 긴장상태로 지내다 오늘 아침에야 마음을 놓았다. 하늘엔 짙은 구름이 바닷가로 물러가면서 구름 사이로 간간이 푸른 하늘이 보였다. 집에 모든 창문을 열어 놓고 상쾌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서니 "오 마이 갓!" 교실이 온통 물바다이다. 지금까지 비가 많이 와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당황스러운 상황에 우선 교실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다행인 것은 컴퓨터 책상 쪽으로는 물이 없었다. 지어진 지 오래된 학교는 복도나 유리창 쪽으로 비가 새는 곳이 많다. 어림잡아 보아도 물걸레로 닦일 물의 양이 아니었다. 우선 숨을 크게 들이켜고 라디오를 크게 틀고 고무장갑을 꼈다. 쓰레받기를 꺼내 비를 퍼서 쓰레기통에 담았다. 바닥에 얕게 퍼져있는 물은 허리를 숙이고 쓰레받기로 조금씩 쓸어 담으려니 고된 노동이었다. 그러는 사이 라디오에서 윤도현 밴드의 노래 <박하사탕>이 흘러나온다. 평소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가 나오니 조금 전까지 힘들었던 일이 덜 힘들게 느껴졌다. 노래를 들으며 물을 쓸어 담았다. 노래가 끝나자 디제이는 보컬 윤도현의 암 투병 소식을 전해준다. 3년간 홀로 투병을 하였고 어제부로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윤도현 밴드는 20대 나의 스타였다.
작년 여름 속초해수욕장 버스킹 공연에 윤도현 밴드가 출연했다. 미리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공연 장소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딸아이와 함께 갔는데 공연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온 아들도 우연히 만나 가족이 함께 즐기게 되었다. 윤도현 밴드의 팬이었기에 20대 때 공연장에 자주 갔었다. 공연에 가면 항상 만나는 쌍둥이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던 시절이 아련하다. 여름밤 락공연이라 잔뜩 기대를 하고 갔는데 그날 윤도현 님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컨디션이 별로 안 좋은 걸까 아니면 감기라도 걸렸나. 혹시 코로나?' 속으로 이런저런 걱정을 했었다. 게다가 객석으로 자주 마이크를 건네는 것을 보고 성의 없이 공연하는 듯 보여 마음이 좋지 않았다. 공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은 내가 알던 윤도현 밴드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그 당시도 암 투병 중이었을 텐데 무리해서 공연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불성실한 공연이 아니었고 아픈 그 당시 최선을 다했던 공연이었는데 서운해하고 오해했던 지난날에 얼굴이 붉어진다.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공연을 해주어 팬으로 감사하고 감사하다.
윤도현 님의 투병 소식을 듣고 또 하나 떠오른 것은 개인 유튜브에 등산을 하는 영상을 올린 것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나도 등산을 좋아하기에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스타의 산행 영상은 반가웠다. 산에 올라 서서히 핑크빛으로 물들던 일몰을 바라보며 스타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가슴이 짠해진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울 것이기에 나의 스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스타의 유튜브 구독하는 것과 같이 윤도현 밴드의 공연 소식을 보려고 팬카페도 가입했었다. 오늘 팬카페에 들어가 보니 팬들의 격려글이 수없이 올라왔다. 그중 한 팬의 암밍아웃글도 눈에 띄었다. 그 분도 암으로 투병 중이신데 윤도현 오빠의 암 투병 완치 소식을 듣고 희망이 생겼다고 글을 올렸다. 그 글에 응원의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댓글을 달지는 않았지만 그분도 암을 이겨내시고 꼭 완치되실 거라 믿는다.
태풍은 간밤에 장대비를 퍼부으며 우리 눈앞을 가로막고 길을 막아서고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어느새 비는 그치고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을 드러냈다. 우리의 인생도 가랑비가 내리는 날도 있고 장맛비가 한 달씩 지속되기도 하고 태풍이 불어 순식간에 삶을 통째로 흔들 때가 있다. 나의 스타가 고난을 극복하고 태풍을 잘 견뎌내어 다시 새 삶 찾아 안도한다. 그의 앞날에 더 큰 태풍은 오지 않기 바라며 그의 음악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연주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