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에서도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기상 시간은 매일 아침 6시. 평일에도 주말에도 휴가지에서도 6시 기상,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바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방금 화장실에서 읽었던 <매일 하면 좋은 생각> 책을 떠올린다. 작가의 사랑하는 루틴들은 이렇다고 한다.
- 오전 6시 굿모닝 팝스 청취(약 6년)
- 전화 영어 수강(약 10년)
- 독서와 글쓰기 (약 30년)
- 검정고시 학습 지원 행사(약 9년)
- 운동 (약 15년)
- 독서모임(약 6년)
-업무 노트 쓰기(약 14년)
5년 이상 지속된 루틴들만 모아봤다고 하는데 그 단단한 내공이 느껴진다. 나의 느슨한 루틴들도 모아 적어본다.
-새벽 6시 기상(약 3개월)
-글쓰기(약 1년)
-독서(약 30년)
-걷기(약 5년)
-기타(약 3주)
나이가 드니 아침 기상시간이 빨라졌다. 6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알람이 울리기 전 5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소리를 죽이고 티비를 보거나 핸드폰 서핑을 했을 것인데 지금은 6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인데 전에는 일찍 일어나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더 자려고 애썼는데 이제는 일찍 일어나 글을 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지기에 벌떡 일어나게 된다. 물론 글쓰기는 매일매일 술술 풀리지 않는다. 글쓰기를 1년이라고 적었지만 최근 다시 쓰기 시작한 시간은 3개월 정도 된다. 지금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재능이 아닌 노력으로 한편씩 완성되어 가는 글을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에 빠지고 있다.
다음으로 하루 종일 틈틈이 책을 읽는다. 화장실에서도 잠깐 읽고 퇴근 후 카페나 도서관, 그리고 집에서 읽는다. 장르는 가리지 않는 편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편인데 요즘은 시집이나 에세이를 주로 읽는다. 독서 30년이라고 적은 것은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국민학교 시절 교실에 있던 학급문고를 닳도록 읽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데미안을 읽었고 20대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었다. 그때는 도서관 버스가 집 근처로 와서 매주 책을 빌려 읽었고 도서대여점에서도 빌려 읽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는 동화책을 많이 읽었다. 지금도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시간이 제일 즐겁다. 이렇듯 즐거운 것이 곧 루틴이 되는 것이다.
아침 기상과 독서 외에도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걷기는 내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다. 매일 미션처럼 만보를 걸어야지 마음속에 품고 있다. 휴가를 와서 걷기를 못했는데 어제는 화암 동굴에서 뜻하지 않게 만보를 걸었다. 무더운 날씨에 동굴까지 올라가는 것은 무척 고됐지만 동굴 안은 10도~15도 내외로 시원해서 걷기 좋았다. 어떨 때는 이렇게 우연히 걷기의 기회가 생기면 보너스를 받는 것처럼 기쁘고, 걷기는 내 숙명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름의 절정 8월에는 걷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될 수 있어 잠깐 한 달만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다. 러닝머신에서 되도록 5 천보는 걷고 온다. 그리고 생활 속 걸음을 합쳐 만보를 채우고 있다. 지금은 말 그대로 걷기에 집중하지만 8월 말부터는 산으로 들로 걸으러 다닐 것이다. 곧 여름이 가면 걷기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몰입은 내가 그 안에 풍덩 담겨지는 것이다. 그만큼 걸을 수 있는 즐거움은 내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고 무기가 된다.
여기에 소소한 3주 루틴도 추가해 본다. 요즘 친하게 지내는 학생 H에게 기타를 배우고 있다. 방학인데도 일주일에 두 번씩 기타 레슨을 해준다. 기타는 10년 전 동아리에 잠깐 배운 적이 있는데 바빠 출석률도 형편없었고 영 음악에 소질이 없는지 실력이 늘지 않았다. 기타 학원에 2년 넘게 다니고 있는 H는 클래식 기타를 잘 친다. 가끔 기타 연주를 해주면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을 정도로 분위기 있는 연주에 홀딱 반하기도 한다. 그냥 농담 삼아 나도 가르쳐 주라고 한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방학 동안 나의 기타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에는 도레미파솔라시도 기본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 연주로 바로 들어갔다. 첫날은 정말 계이름도 외우기 어렵고 기타줄 튕기는 것이 어색했는데 일주일 정도 연습하니 얼추 비슷하게 기타줄을 튕기게 되었다. 매일 30분 정도 엉성한 기타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인생에서 악기 한 가지 정도는 연주할 수 있어야 인생이 풍부해진다는 말을 들을 적 있다. 기타가 내 인생의 악기가 되어줄지는 모르겠지만 기타줄은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나의 루틴들은 몇십 년을 지나오기도 하고 이제 20일 된 신생 루틴들도 있다. 그렇다고 거창한 것들은 아니다. 소소한 루틴이 쌓여 나의 일상이 되고 그 루틴으로 내 삶이 지어지고 있다. 매일매일 느슨하지만 소소한 즐거운 루틴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물론 이 물방울들이 쌓이다 보면 개울도 되고 강물도 되고 바다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하나의 물방울을 만들어 내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