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방을 들고 가기엔 워낙 짧은 일정이었다.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 자격증시험을 위해 서울을 다녀와야 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시험이라 전날 올라가 하룻밤 자고 시험을 보러 가기로 했다.
짐을 챙기려니
에코백은 무리고,
아이들 백팩도 좀 그렇고,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은 너무 작고......
궁여지책으로 옷장 깊숙이 넣어놓은 루이뷔통 가방을 꺼냈다. 애들 아빠가 한 10년 전쯤 회사에서 중국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온 가방이다. 중국여행 중 쇼핑센터를 들렀는데 그곳이 명품 짝퉁 가방을 파는 곳이었단다. 남들이 이것저것 고르는 것을 보고 그냥 자기도 하나 사 온 거란다. 그것도 A급으로다, 트렁크에 꾸깃하게 넣어왔던 가방이다. A급이라고 몇십만 원을 주고 사 왔단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방 중에 제일 비싼 가방인 셈이다.
이 가방을 들고 외출했을 때 누군가 가방 이쁘다고 하면 뭔가 민망해서 "아니에요, 남편이 중국여행 가서 사 온 A급이에요. "라고 스스로 짝퉁임을 털어놓았던 가방이다. 사실 나이 오십이 되도록 명품가방은 하나도 없다. 명품은 잘 알지도 못한다. 요즘 들고 다니는 가방도 기관에서 홍보용으로 보내준 에코백이다.
남편이 사다 준 가방은 사이즈가 큰 편이라 이것저것 넣어 다니기 좋아하는 내 성격에 맞아 한동안 잘 들고 다녔었다. 하지만 내가 즐겨 입는 스포티한 룩에는 안 어울려 옷장에 넣어놓고 안 들고 다닌 지 몇 년 되었었다.
여행도 아니고 해서 짐도 대충 꾸렸다. 세면도구도 숙소에 있을 것 같아 패스, 스킨과 로션은 아이가 챙기긴다고 해서 패스, 조그만 화장품 가방에, 잠옷으로 입을 반팔티에 레깅스 하나 챙기고, 추위를 많이 타니 장갑이랑 머플러도 챙기고, 충전기도 챙기고, 책도 한 권 넣어갈까 했지만 무거워서 도로 뺐다. 전자책으로 읽으면 된다는 생각에 이걸로 끝! 뭐, 사실 챙긴 것도 없다.
고속버스를 타고 저녁 7시쯤 숙소에 도착해 하룻밤 자고 이른 아침 아이를 시험장소에 데려다주었다. 혼자 시험 끝날 때까지 있을만한 키페를 찾았다. 휴일 아침 9시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혼자 앉아있는 사람들 옆으로 나도 자리를 잡았다. 모두 뭔가 열중이었고, 오른편 옆테이블에서는 서너 분이 독서토론이 한창이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책에도 글쓰기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벗어놓은 겨울점퍼 옆으로 우뚝 서 있는 이 루이뷔통 짝퉁가방이 촌스럽고 눈에 거슬렸다. 괜히 혼자 얼굴을 붉혔다. '왜 이 가방을 들고 왔을까?' 눈썹을 찡그리며 자책한다. 마치 내가 짝퉁이 된 기분이 잠시 들었다. 촌 아줌마가 서울 온다고 멋 내려고 일부러 명품 가방을 들고 왔다고 누군가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리고 더욱이 내 가방에 신경 쓰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자책의 마음은 수그러들었다. 바리스타가 내려준 향긋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휴대폰 속 전자책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았다. 그렇게 아이 시험이 끝날 때까지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어쩜 작가는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아직도 읽지 않은 책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방을 탐내기보다 많은 책을 탐내는 나, 나이 오십 명품 가방보다 명품 책을 탐하는 내가 되어보자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