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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Dec 06. 2023

벤츠에서 일출 보기

시작은 이러했다. 막 수능을 마친 고3 엄마인 J언니가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식당에서 만나기보다 집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편하게 얘기하며 먹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J언니의 집에 나와 K, S언니 넷이 모이게 되었다. 메뉴는 과메기와 굴보쌈으로 정해졌다. 거기에 와인도 한잔씩 곁들였다.


"와, 과메기! 너무 맛있는데!"


내가 과메기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던가! 싶게 싱싱한 야채쌈에 초장을 올려 먹는 과메기는 기대이상으로 맛났다. 근데 굴은 또 왜 이렇게 단 것인가. 과메기쌈과 굴보쌈을 번갈아 싸 먹으니 와인이 쭉쭉 들어갔다.


"과메기에 와인도 좋은데? 헤, 헤, 헤"

와인 몇 잔에 취기가 올라오는지 웃음이 실실 나왔다.





매일 만나지 않아도 매일 만난 것 같은 이들과 송년회가 무르익어갔다. 식사 중간중간 각자 사는 이야기를 주섬주섬 꺼내놓았고 J언니가 잊고 있었던 미션을 생각해 냈다.


"우리 전에 벤츠 타고 모닝커피 마시러 가기로 했었는데 아직 못했네."

"언제? 우리가?"

나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K의 남편이 작년에 벤츠를 뽑았는데 J언니가 벤츠 타고 커피 마시러 가자고 제안했었단다. 벌써 그 이야기가 일 년 전이었다고.


"K야, 우리 벤츠 태워줘. 아침에 일출 보러 가자. 내일 당장! 모였을 때 가야 돼. 안 그럼 못가!"

"그래, 인생 뭐 있어. 우리 언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여튼 그렇게 급 일출보기 미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밤 10시가 넘어 헤어진 우리는 아침 6시 30분에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정말 6시 30분에 집 앞에 도착했으니 나오라는 '톡'이 울렸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6시에 일어나 나갈 준비는 하고 있었고 만약 시간이 돼서도 안 오면 다시 잠을 잘 요량이었다. 하지만 여인들은 그렇게 모두 모였고, 50대 아줌마 4명은 벤츠를 타고 일출을 보러 달렸다.


사실 속초에 살아서 맘만 먹으면 언제든 일출 볼 수 있다. 아니, 친구는 아파트 집에서도 일출이 보인단다. 하지만 벤츠에서 봐야 한다는 J언니의 황당한 "소원" 덕분에 새벽 공기를 가르며 벤츠를 탔다.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벤츠 타보니 좋긴 좋더라!)


대포항을 지나 바다 건너편 빈 공터에 차를 세우고 서서히 붉어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구름에 가려진 바다는 일출시각을 좀 넘겨 해를 보여줬다. 벤츠 주인마나님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우리는 일출을 보며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는 우리의 50대, 좀 덜 힘들게, 좀 더 행복하게 지나가길 떠오르는 해에 빌어본다.



(아쉽게도 벤츠 차 사진은 없고, 벤츠 안에서 찍은 일출사진만 남아있다.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마, 우리 그냥 집 가는 건 아니지?"

애써 새벽부터 일어났는데 그냥 가기 아쉬워 말을 뺐어봤다.


"그건 아니지. 그래, 차 마시러 가자!"

아침 7시에 여는 스타벅스에 빤딱빤딱 빛나는 검정 벤츠를 주차하고 단호박샌드위치와 커피로 해장을 했다. 시끌벅적 또 한바탕 수다를 늘어놓고 각자의 집으로 해산했다. 벤츠 타고 일출보기 미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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