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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Jun 28. 2024

생곤드레밥을 지으며

요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한살림에 들러 장을 보고 있다. 전에는 주말이면 대형마트에서 장을 봐서 냉장고에 꽉꽉 채워놨는데 제일 먹성 좋은 아들이 타 지역으로 가다 보니 냉장고 음식은 도통 줄지 않고 음식을 해놔도 다 못 먹고 버리는 경우가 많아져 이제는 그냥 그날그날 찬거리를 사 오고 있다.


한살림 매장에 갈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탐색하는 시간은 즐겁다. 장보고 있는 다른 분의 장바구니도 곁눈질로 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당근이나 양파를 사 오다가 들기름도 사고 내 최애 간식 누룽지도 한살림에서 만났다. 누룽지는 끓여 먹으려고 샀는데 그냥 오독오독 씹어 먹다 보니 한 봉지를 이틀 만에 다 먹어버리기도 했다.


이번 주에는 솎은 여린 열무와 생곤드레 나물을 사 왔다. 진짜 여리디 여린 열무는 된장국을 끓이고 생곤드레 나물은 곤드레 밥을 지을 것이다. 말린 곤드레 밥은 먹어봤어도 생곤드레는 생소해서 호기심에 처음 구입해 본 것이다.


나이가 이만큼 들었어도 아직 해보지 않은 요리도 많다. 자취 경력에 주부 경력까지 합하면 30년이 넘는데 요리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요리 자신감이 바닥인 데다 어떨 때는 내 인생의 위태로움도 함께 나를 덮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 무엇도 아니다, 나는 왜 이럴까? '라고 스스로 자책할 때마다 주방에 불을 켜고 마늘을 다지고 양파 장아찌를 담그고 파 한 단을 잘게 썰어 냉동실에 쟁이게 된다. 어쩌면 주방은 나를 이 나이까지 이끌어준 고마운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하다 보면 요리 하나는 완성되니까,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맛은 밍밍할지라도 아주 못 먹을 음식은 아니니까.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장을 보고 집에 와서 얼른 쌀은 한 컵 정도 씻어 불려 놓고 사 온 열무와 곤드레를 흐르는 물에 3번 정도 씻어 놓는다. 열무는 송송 썰어 집 된장 한 숟가락에 미소된장 한 숟가락을 더 풀어 국을 끓인다. 곤드레는 한번 데쳐내서 잘게 썰어 약간의 소금과 들기름을 넣고 무쳐놓는다. 냄비에 들기름을 조금 두르고 불린 쌀을 먼저 볶다가 밥물을 넣고 데친 곤드레도 넣고 중불에 끓인다. 쌀보다 곤드레가 더 많이 들어간 듯하지만 곤드레가 숨이 죽으면 서로 양이 비슷해질 것 같다. 밥물이 잦아들면 약불로 줄이고 기다린다.


 그사이 당근채도 살짝 얹으면 이쁠 것 같아 올려본다. 잠시 후 밥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냄비 뚜껑을 열어 밥이 익었는지 먹어보니 밥이 거의 된 것 같아 불을 끄고 뜸을 들인다. 고소한 냄비밥 냄새가 집안에 잔잔히 퍼진다. 밥 뜸 들이는 동안 얼른 간장 양념을 만든다. 간장에 양파를 잘게 썰어 넣고 다진 마늘에 고춧가루와 깨도 뿌리고 마지막 들기름도 넣어준다.


당근을 넣었더니 역시 밥색이 곱다. 곤드레밥을 푸면서 곱창김이 뒤늦게 생각났다. 얼른 냉동실에서 김을 꺼내 잘라서 함께 냈다. 여린 열무로 끓인 된장국을 곁들여 낸다. 곤드레 밥 뜸을 더 들였으면 누룽지도 나왔을법한데 누룽지가 없어 아쉬웠지만 곤드레 밥은 그 자체로 훌륭했다. 곤드레 밥, 이제는 식당에서 안 사 먹어도 될 것 같다. 집에서 뚝딱해 먹어야지!


거창한 요리가 아니라도 소박한 한 그릇 음식이 나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어제 넘어졌더라도 오늘 다시 일어나 밥을 한다. 우리네 엄마들이 그랬듯이 쌀을 씻고 국을 끓이다 보면 새 하루가 그렇게 또 시작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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