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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Apr 12. 2024

따사로운 봄햇살 속 열무비빔밥

꽃샘추위가 가시고 제법 기온이 올라간 4월의 일요일 아침, 베란다에 쏟아지는 햇살이 이제는 정말 봄이라고 믿어보라는 듯 수줍게 손짓한다. 베란다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햇살을 잠시 만끽하다 '청소하기 좋은 날이네' 속으로 생각이 들었다.


베란다에 겨우내 방치된 화분들을 이제는 정리해야 같았다. 간단한 묵념과 함께 빈 화분들을 정리하였다. 고장 난 청소기도 한철을 고스란히 베란다에서 보냈었다. 뽀얗게 먼지 쌓인 청소기도 내어버리고 베란다 선반에 쌓여있던 물건들도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렸다. 오랜만에 베란다 수도를 열어 물청소를 하였다. 물청소 후 거실에 있던 화분 3개를 나란히 베란다로 내어놓았다.  


베란다 청소를 시작하기 전 세탁기에 돌려놓았던 이불빨래도 다 되어 빨랫줄에 널었다. 베란다 청소가 끝나고 신발장 정리를 시작했다. 날이 좋으니 운동화도 잘 마를 것 같아 제일 지저분한 운동화를 골라 운동화도 빨았다. 베란다에서 앉아 운동화에 비누를 묻히고 솔로 살살 문질러 때를 벗겨낸다. 뿌연 비눗물이 투명한 물이 될 때까지 서너 번 운동화를 헹구어낸다. 물기를 잘 털어낸 운동화를 빨랫줄에 나란히 널어준다.


청소하고 나니 출출해져 늦은 아침을 차린다우선 배추와 팽이버섯,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인다. 요즘 국물요리를 덜 먹으려고 하기에 두부랑 배추는 많이 넣고 국물은 조금 넣어 자박하게 끓였다. 다음엔 팬에 곱창김을 굽는다. 한 장 한 장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리는 정성스런 김 굽기가 결코 아니다. 휘뚜루마뚜루 휘리릭 대충 구워내는 김구이다. 우선 곱창김을 4등분으로 잘라 놓고 팬에 들기름을 두른다. 한꺼번에 다 넣으면 뒤집기 힘드니 우선 잘라놓은 김을 반을 넣고 살살 뒤집어 가며 굽는다. 어느 정도 기름이 스며들고 나면 남은 김을 다 넣고 소금도 좀 뿌려주면서 역시 앞뒤로 살살 뒤집어가며 굽는다. 김이 파래김처럼 초록빛을 띠면 꺼내서 김통에 담아놓는다. 


냉장고를 열어 어제 시장에서 사 온 열무김치를 꺼냈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난전에서 파는 열무김치가 맛나보여 사 왔었다. 김치통을 열어 맛을 보니 아직 덜 삭았지만 아삭하니 맛있다. 고추장을 꺼내 들기름과 깨, 매실액, 마늘을 넣어 양념을 새로 했다. 대접에 밥을 푸고 며칠 전 보쌈을 시켜 먹고 남았던 상추 몇 장도 손으로 잘라 대접에 넣고 열무김치와 계란 프라이도 하나 올리고 고추장 양념에 들기름도 한 스푼 넣어준다. 식구들은 모두 공사가 다망해 외출 중이라 혼자 열무비빔밥을 먹었다. 청소 후 먹는 밥은 역시 꿀맛이다. 열무비빔밥을 썩썩 비벼서 구운 곱창김에 싸서 먹었다. 이번에 새로 산 김은 정말 달다. 비빔밥을 연신 김에 싸 먹다 보니 밥이 반으로 줄었다. 아쉬운 마음에 된장찌개로 숟가락을 돌린다. 보들보들한 두부를 건져먹으니 이보다 더한 것은 없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열무비빔밥을 거하게 먹고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주전자에 뜨근하게 끓인 결명자차를 한잔 마셨다. 살살 졸려오기도 하면서 눈꺼풀이 풀어진다. 그대로 스스로 잠이 들 것 같은 봄날이다. 유독 춥게 느껴졌던 지난겨울, 역시 겨울 지나면 봄이 온다는 새삼스런 진리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따사로운 햇살 속에 내가 다시 피어나는 느낌도 들었다. 이제 나이 오십 하나, 이제야 나를 조금 알 것 같다. 덜도 더도 아닌 딱 적당한, 정말 좋은 나이를 지나가고 있구나 깨달았다. 햇살 좋은 날, 비빔밥처럼 맛깔스럽게 이리저리 비벼진 나의 인생이 이제야 여물어가고 있다. 






© nikolay_smeh,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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