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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Mar 08. 2024

한약 먹는 아이를 위한 식단

작은 아이는 생리통이 시작되면 거의 몸져눕는다. 특히 밤에 생리가 시작되는 날이면 잠도 못 자고 눕지도 못한 채 배를 움켜쥐고 잔뜩 웅크리고 밤을 보낸다. 약을 먹어도 첫날은 생리통을 된통 심하게 앓는다. 생리통도 유전인지 나 또한 고등학교 때 하늘이 노래지는 걸 느끼며 길에서 쓰러져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처음엔 무슨 큰 병인 줄 알고 놀랬는데 진찰 후 의사 선생님은 혹시 생리 중이냐고 물어봤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생리 중에 쇼크로 쓰러져서 많이들 온다고 한다. 응급실 한켠에서 링거를 맞고 겨우 퇴원해서 집에 오니 생리가 시작되었다. 또 한 번은 20대 초반 회사에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생리통으로 도저히 출근이 불가해 결근하고 집에 누워 링켈을 맞은 적도 있다. 동네 이모가 간호사 출신이어서 링켈을 놔주셨던 기억이 난다.


한달에 한번씩 고생하는 아이에게 방학 동안 한약을 먹여보려고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사 선생님은 손으로 맥을 짚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아이 상태를 확인하더니 쫙 뽑여 나오는 그래프를 보여준다. 소화도 잘 안되고 밤에 잠도 잘 못 잘 것이고 손발이 찰 것이라며 몸을 따뜻하게 해 주라고 하신다. 한재 먹어서는 효과가 없을 것 같고 두재는 먹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우선 한약을 지어왔다. 그런데 한약 먹는 동안 금기 음식이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한약 복용 안내문에는 돼지고기, 닭고기, 숙주, 녹두, 메밀, 차가운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먹지 말라고 되어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돼지고기 삼겹살에, 치킨에, 숙주 듬뿍 넣은 마라탕에, 차가운 탄산수, 탕후루, 아이스크림인데... 아뿔싸, 먹일 것이 없다.


외식을 해도 고깃집은 제외해야 하고(소고기, 오리고기는 별로란다.) 해산물로 생선회나 해물찜을 먹거나 돈가스 대신 생선가스(이건 맛없다고 안 먹어 내가 다 먹음)를 시키고 김밥에 햄도 못 먹으니 김밥은 집에서 햄 빼고 싸주었다.


그런데 실수로 금기음식이 들어간 음식을 먹기도 했다. 친구들이랑 마라탕집에 갔는데 꿔바로우를 친구가 사줬다고 한다. 울 작은 아이 왈, 꿔바로우가 소고기인 줄 알았다며 엄청 억울해했다. 빨리 한약 먹고 치토스치킨을 시켜 먹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는데 꿔바로우 때문에 한약을 못 먹어 하루가 더 밀렸다고 원통해했다.(한의원에서 만약 금기음식을 먹으면 그땐 한약을 먹지 말라고 했다.) 또 한 번은 쌀국수를 집에서 맛있게 끓여 먹고 나서 한약을 먹으려는 찰나 아차, 숙주를 넣고 쌀국수를 먹은 것이다. 나도 아이도 바보같이 숙주를 먹으면서도 인지를 전혀 못했던 것이다. 어이쿠, 그래서 또 치토스치킨 먹는 날이 딜레이 되었다.


지난주에는 마트를 갔더니 이효리가 선전하는 풀무원 지구식단 냉동식품을 발견했다. 두부로 고기맛을 낸 제품이 있었다. 호기심에 사서 집에 와서 먹었더니 두부텐더는 맛이 별로라 하는데 불고기부리또가 아삭아삭 맛있다고 한다. 다시 사러 갔더니 품절이었다!! 나름 두부와 콩고기가 맛이 나쁘지 않앟고 나같이 고기를 즐겨하지 않는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한약을 2주 정도 먹이면서 차려줬던 음식을 떠올려본다. 그중 아이에게 베스트를 꼽아보라고 했다. 4개를 골라주며 그중 소고기김치비지찌개는 0순위라고 한다.


0. 소고기김치비지찌개


우선 냄비에 김장김치와 소고기를 함께 넣고 잠시 볶아야 하는데 깜빡하고 김치에 물을 부어버려 그냥 끓이기로 했다. 비지를 넣고 끓이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소고기를 넣고 끓인다. 마늘과 양파도 썰어 넣고 파도 넣는다. 은근히 김치가 물러지도록 약불에 졸이다 간을 본다. 싱거워 새우젓도 넣고 국간장도 조금 넣었다. 아이는 반찬을 즐겨하지 않기에 마트에서 구워파는 김에 비지찌개만 올려 상을 차려 주었는데 비지찌개를 먹으며 엄지 척을 날려준다. 고심해서 메뉴를 고른 낙이 있다.


1. 김치전


김치전은 부침가루, 물, 김치 그리고 기름만 있으면 족하다. 송송 썰은 김치에 부침가루와 물을 1:1로 넣고 반죽을 하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쳐내면 끝이다. 김치전은 이토록 쉬워서 아이가 먹고 싶으면 스스로 만들어서 먹기도 한다. 노릇노릇하게 구워달라는 주문에 심혈을 기울여 전을 부친다. 아이는 앉은자리에서 김치전을 3장을 뚝딱하고 정확하게 30분 알람을 맞춰서 한약을 먹고 방에 들어간다.



2. 팽이버섯과 청경채만 넣은 0단계 마라탕


사실 이것은 재료만 준비해 주고 만드는 것은 아이가 만들었다. 숙주를 못 넣으니 대신 팽이버섯과 청경채를 넣기로 했다. 소고기도 넣으라고 했는데 싫다고 야채만 있는 마라탕이 좋다나. 팽이버섯을 2봉을 잘라 잘게 찢어놓으니 정말 산 같았다. 육수를 붓고 끓이며 버섯과 청경채를 씻어 넣는다. 마라탕 소스를 넣으면 완성!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팽이버섯을 건져먹는 아이를 보며 참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음식 하나로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 말로만, 무늬만, 고3인 아이. 하지만 다 먹고 나서 시판용 육수에 치킨스톡이 들어 있었다고 또 울상을 짓는다. 그래도 몇 방울일 거라고 달래며 또 한약을 먹였다.



3. 달래간장과 가자미구이


어제는 편의점에서 달래와 냉이가 1+1에 3200원을 하길래 냉큼 사가지고 왔다. 양은 많지 않지만 식구들 한 끼는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냉이는 다음에 된장찌개에 넣으려 두고 달래만 씻어 쫑쫑 썰어 놓았다. 썬 달래를 종지에 담고 간장과 깨, 들기름을 넣고 달래간장을 만들었다. 그리곤 냉동실에서 있던 가자미도 두 마리 꺼내 노릇노릇 구웠다. 갓 지은 하얀 밥에 달래간장, 가자미 구이를 함께 내주었다. 아이는 우선 달래간장을 한 숟가락 넣고 밥에 비벼먹더니 이번엔 "역시 봄향기로구만." 애늙은이 같은 말을 하며 밥을 먹는다. 가자미살을 발라 숟가락에 올려주니 좋아라 한다. 낭랑 18세(?) 처자가 아직도 엄마가 발라주는 생선을 잘도 받아먹는다.





매일 먹을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며 밥을 지으며 한약 두번은 못 먹일 것 같다. 그래도 아이가 이번달 생리를 하면서 생리통이 현저히 줄었다고 좋아한다. 효과가 있다니 다행이고 다음 달에도 덜 아팠으면 하고 '사람, 그것도 여자가 되는 길은 컴컴한 동굴에서 통마늘을 100일 동안 먹는 것보다 더 험난한 여정이구나' 싶다.






© nordwood,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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