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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Jan 05. 2024

된장찌개 20년 차

우리 시어머님은 아내로 50년을 사셨다. 매일 시아버님 세끼 밥상을 차려드리고 옷도 정갈하게 손빨래해 드리고 집안팎을 손수 가꾸시며 50년을 사셨다. 말이 50년이지 그 세월 얼마나 고됐을까. 강산이 다섯 번 변한 시간, 감히 상상도 안 되는 시간이다. 오직 아내로 엄마로 묵묵하게 살아내신 시간들이다.


그 긴 세월이 어머님의 된장찌개에도 녹아있다. 우리 어머님 음식 중 단연 으뜸은 된장찌개이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김장하는 날 수육을 삶아내면서도 곁에 칼칼한 된장찌개를 같이 내어주신다. 여름철 마당에서 삼겹살을 굽는 날에도 된장찌개가 딸려 나온다. 50년을 끓여 오신 된장찌개의 맛은 가히 진국이다. 사실 노릇노릇한 삼겹살은 잠시 뒤로 하고 누구든 호박을 팍신하게 끓여낸 된장찌개에 먼저 밥 한 공기를 말고 시작하게 한다. 어머님의 평생의 한이 이 된장찌개에 녹아 있다 감히 말할 수 있다.






새해연휴부터 시작된 감기가 낫질 않는다.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갔다. 나와 같은 어른이들이 병원에 가득했다. 모두 콜록콜록 기침을 하거나 아니면 열이 나고 몸살이 왔단다. 진료를 받고 약을 한가득 받아왔다. 약을 먹으려면 식사를 해야 하기에 집 앞 편의점에서 된장찌개용으로 두부를 사 왔다.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려 그러는지 자꾸 아파서 신경이 쓰인다. 벌써 일주일째 감기로 시름시름이다. 내가 아프니까 집안이 엉망이다.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없고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 병원을 다녀와서 좀 누워있으려니 괜히 신경 쓰였다. 아프고 나니 일상 속 기본적인 것들도 해결이 안 된다.


이렇게 아플 때는 가끔은 내가 아내이지만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오늘 수고했다고 얘기해 주는 아내 말이다. 물론 요 며칠 남편도 딸아이도 엄마 간호하느라 애썼지만 아내만큼 내 마음을 살뜰히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정신을 차리고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마침 방학인 아이가 도와준다고 나선다. 우선 아이에게 청소기를 부탁하고 나는 세탁기를 돌린다. 싱크대의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도 한데 모은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물건들도 치우고 쓰레기도 갖다 버렸다. 잠깐 기운을 차리고 정리를 하니 집안이 산뜻해진 기분이다.


정리를 마치고 저녁으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며칠 아프고 나니 된장찌개가 먹고 싶었다. 재료는 사온 두부와 냉장고 속 호박뿐이다. 두부와 호박을 썰어놓고 막장과 시판용 된장을 반스푼씩 넣고 다시마 한 조각, 멸치 대여섯 마리를 넣고 함께 끓인다. 그리고 파를 썰어 놓고 끓어오르길 기다린다. 그 사이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놓는다. 찌개가 끓으면 파와 고춧가루 한 스푼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음식에 관한 글을 자주 쓰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음식솜씨가 그렇게 출중하지 못하다. 겨우 식구들 밥만 간신히 해 먹이는 정도인데 음식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히 부끄럽기도 하다. 글쓰기 수장이신 꽃보다 마흔 님은 지금 써지는 글들을 다 쏟아내고 나면 그다음에 진정한 글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음식 이야기가 써지는 동안은 계속 써볼 요량이다. 다음의 글들이 기다려지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이다.


아이와 이른 저녁을 차려 먹는다. 나는 구수한 된장찌개에 밥을 반공기 되게 말아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 된장찌개에 말은 밥알들이 먹기 좋게 퍼져서 소화도 잘 될 것 같다. 어머님의 50년 주부경력에 비할 바 못되지만 그래도 20년을 끓여 온 찌개이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무수히 많은 날 아침상에 올려졌다. 흔한 된장찌개이지만 조미료 없이 나만의 레시피로 그래도 가장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요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


봄날에는 향긋한 냉이도 넣어보고 지금 같은 겨울날에는 미역도 넣고 끓이기도 한다. 재료는 한껏 수수하고 만드는 방법도 의외로 간단하다. 만드는 시간도 야채가 익는 동안 후루룩 끓여내면 끝이다. 된장찌개를 끓이다 보면 세상 어렵게 살지 말라는 다독임을 받게 된다. 그냥 쉽게 쉽게 살라고, 물 흐르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라고.... 된장찌개도 그렇게 끓이는 거라고.

 

음식이야기를 쓰는 지금 순간 내가 음식을 하면서 받았던 위로가 나를 글쓰기로 이끌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음식을 먹는 순간보다 만드는 시간이 더 행복했다. 찌개가 끓기를 기다리고, 뜸이 들기를 기다리고,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들이 음식을 더 풍미 있게 만들고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앞으로의 남은 시간들도 그렇게 익히고 그렇게 익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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