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마트에 간다.
고3아이가 일주일을 버티는 유일한 숨구멍이기 때문이다. 마트 2층 문구코너에서 필기감 좋은 펜도 사고 애완 물고기를 위한 용품도 구경하는 재미에 주말이면 마트에 가자고 먼저 나선다. 하지만 이번주는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에 지쳐 그냥 쉬고 싶은 맘이 더 컸다. 푹푹 찌는 여름이라 나가 돌아다니는 것도 만사 귀찮다가도 고3 아이 소원을 못 들여주랴 싶어 따라나섰다.
아이가 2층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주방용품을 구경했다. 수저세트도 구경하고 그릇들도 구경하지만 선뜻 살 용기가 나질 않는다. 집에도 그릇이 넘쳐나기에. 2층 구경이 끝나면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다. 1층에 다다르면 먼저 시원한 맥주 냉장고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코로나 시기 이후 시식 코너는 쳐다도 보지 않고 지나쳤는데 오늘은 자꾸 눈이 갔다. 아점을 먹고 나온 지 시간이 좀 되어서 그런지 출출해졌다. 쇼핑보다 먼저 새로 나왔다는 과자도 먹어보고 피자도 시식도 하고, 그러다 보니 목이 말라 냉커피도 한잔 맛봤다.
아이처럼 신나서 시식대를 찾아 돌아다녔다. 이번주에는 새롭게 선보이는 떡코너도 있고 비빔면도 시식을 해서 맛볼 것들이 풍성하다. 이렇게 먹어본다고 다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입맛에 맞는 것을 만나면 한두 가지 사기도 했다. 과일 코너를 돌아가는데 대박, 체리도 시식한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나란히 서서 체리를 맛본다. 딸아이는
"누가 보면 엄마랑 아들이라 생각하겠어요. 그만 좀 드세요."
라고 눈으로도 채근하면서 입술을 꽉 깨물면 말한다. 하지만 다음코스는 삼겹살, 정육코너에서 이쑤시개를 들고 삼겹살 반의 반의 반 조각을 먹으려고 얌전히 기다린다.
시식을 하다가도 사람이 별로 없는 코너에서는 직원이 심심할까 봐 일부러 먹어주기도 했다.
"오늘 1+1 행사합니다. 만두 시식해 보고 가세요!"
약간 긴장한 듯한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살펴보니 앳된 얼굴을 한, 딱 봐도 여름휴가시즌 대학생 알바인 듯하다. 직원의 애절한 눈빛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가던 길을 멈추고 만두를 맛보았다. 반도 아닌 삼분의 일로 자른 김치만두를 입 속으로 집어넣다가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시식에 진심인 나를 느낀다.
"음, 맛있어요!"
알바 직원을 향해 진심으로 맛있다는 표정과 함께 괜히 엄지척 손가락을 해 보이며 만두 1+1 두 봉지를 카트에 담았다. 나의 아들과 딸들도 언젠가 저 자리에 서있을 수 있기에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알바 직원에게 윙크를 날려주며 만두를 한 개 더 집어 맛있게 먹어주었다.
사실 걷기는 좋아해도 아이들 어릴 적에는 개구쟁이 남매를 데리고 마트에 다니는 것은 나에겐 모험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에 장난감을 들고 나타나면 대략 난감이었다. 그 이후로도 항상 마트에서 장보기는 고된 일처럼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젠 다 큰아이가 끄는 카트에 그냥 예의상 한 손만 걸치고 다니면서 시식할 곳을 찾아 우아하게 어슬렁거린다. 때를 기다리니 이런 태평성대가 오는구나 싶다. 다이어트한다는 아이가 이것저것 카트에 넣는 것을 다시 매대에 빼면서 말한다.
"민지야, 저기 미숫가루를 시식하네. 그래, 여름엔 얼음 동동 미숫가루는 먹여줘야지."
그리고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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