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큰 사건들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알기 위해서는 느껴야만 하는 걸 지도.

by 히세

나는 뮌헨 소제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한다. 지난주 유럽지역 신입 직원들을 위한 교육이 있었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고, 나는 이스라엘 엔지니어들과 합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지금 전쟁 중이므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대화기 흘러갔고, 어떻게 이스라엘 국민들이 전쟁의 피로를 견딜 수 있는지 내가 물었다. 알고 보니 대부분 이스라엘 아파트에는 지하 방공호가 있고, 일부 국경지역을 제외하고는 대피 안내방송이 있은 후 방공호까지 이동하는데 충분한 시간이 있어 실제 생명의 위협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 'shelter'와 'enemy'가 귀에 들어왔고, 나는 자동적으로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이전까지 나는 아스라엘의 역사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걸 감정과는 무관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이스라엘 전쟁의 책임이 이스라엘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그 이유는 2000년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에 갑자기 들어와서는 이제부터 이곳이 자기들 땅이라고 선언(이스라엘 건국연도 : 1948) 한 것이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판단이 아직도 틀리지 않다고 보는데, 2000년 전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무언가를 돌려달라고 요구한다면,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개인이나 단체는 거의 없을 것이고, 이 세상은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그들의 역사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이스라엘이 그 말도 안 되는 건국을 해내고 수많은 전쟁과 희생을 거치면서 아직까지 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유대인들이 공유하는 고난의 역사와 그로 인해 형성된 강한 공동체의식이 있다. 유대인들의 고난의 역사는 홀로코스트(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대인 학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이니치(일본거주 한국인)가 일본의 관동 대지진 때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으로 학살된 것과 같이, 유대인은 유럽에 흑사병이 돌 때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으로 학살됐다. 유대인들은 종교의식을 위해 영아를 살해한다는 소문으로 죽임을 당했고,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렴되었던 스페인에 기독교 왕국들이 돌아오면서(레콩키스타) 종교적 회복을 이유로 스페인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물론 이런 광범위한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유대교의 폐쇄적인 특징(유일신, 선민사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점은 도덕적인 옳고 그름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이다. 유대인은 그들의 역사를 후대로 전달하는 관습을 통해 강력한 유대의식을 유지해 왔고, 그들이 대대로 공유한 고난의 역사와 집단적인 힘이 이스라엘이 전쟁을 계속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도덕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점, 아직까지 인류가 합의에 이른 도덕적인 공리가 생각보다 탄탄하지 않다는 점(현시대에 가장 확고한 도덕적 공리는 자유의지인데, 인류역사에서 자유의지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건 중세가 끝나고도 한참 이후이며, AI의 발전으로 개인들이 인생의 결정을 AI에게 의존하면 이 역시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을 보면, 도덕적 판단을 떠나 집단적인 믿음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미래를 예측하는데는 더 유용할 것이다.

인간이 진실보다는 이야기에 더 민감하고, 인간의 욕망과 의지가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껴"보는 것이야 말로 어떤 사건의 진정한 이해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글을 통해서 이런 느낌을 갖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나서야 그걸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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