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와 믿음

서로 멀어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것일지도.

by 히세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 돈 등 탄탄한 믿음이 필요하듯이, 수학과 과학에도 공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롭다. 공리는 증명 너머에 있는 것이다. 참과 거짓을 논할 수 없는 일종의 절대적인 참이다. 수학의 공리는 교회의 성경과 같다. 둘 다 부정할 수 없는 전제이고, 이런 전제가 없었다면 두 분야 모두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은 그 두 분야가 추구하는 방향과 작동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왜 이런 공통점이 있을까?


우선 이 지점이 선험적 인식의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말하는 소위 고차원적인 생각은 탄탄한 기초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생겨날 수 없다. 이는 과학혁명의 구조에서도 확인되는데, 설사 나중에 그 진실을 부정하게 될지라도, 과학적 검증과 발전은 이전에 쌓아온 탄탄한 진실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이런 진실이 영원히 진실일 리는 없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학창 시절 절대 진실이라고 배웠던 물리법칙들도 마찬가지다. 뉴턴역학은 양자의 세계를 설명하지 못한다. 빛은 우리의 직관에서 매우 벗어나게도, 입자이기도 하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관찰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한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이를 인식론과 연관해 생각해 보면, 인간의 그 어떤 관찰행위도 대상에 개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인간은 어떤 존재를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없다. 관찰 행위 자체가 대상에 영향을 미치고, 대상에 영향을 주지 않고 어떤 대상을 관찰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양자역학은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한편, 믿음 자체가 인간을 움직이는 에너지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강력한 믿음은 그 진실성이 너무 당연해서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성경의 진실여부는 매우 논쟁적인 반면, 자유의지는 일부 학자들에게만 논쟁거리가 된다. 자유의지의 존재는, 50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의지라는 공리는 현대사회 거의 모든 이데올로기에서 채용되고 있다. 법을 위반했을 때 범인을 처벌할 수 있는 이유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믿음을 근간으로 하는데, 노력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자유의지가 전제되어 있다. 최근 유럽의 카톨릭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고, 과학이 이토록 큰 권위를 가지게 된 이유는, 어쩌면 두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회는 그 진실성 여부에 많은 논쟁이 있음에도, 설득력 없는 정보를 근거로 여전히 성경이 참이라고 우긴다. 반면 과학은 기존의 진실을 의심하는데 개방적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설득력 있는 정보를 쌓아왔고, 결과적으로 더 큰 믿음을 얻었다.


세상은 진실보다도 믿음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믿음은 감정과 관련되어 있고,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니까? 어쩌면 진실을 다시 정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진실 : 아직 반박되지 않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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