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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Apr 10. 2022

날 것

여행산문. 여행에세이

아침에 창을 열고 커피를 마시면 커피잔의 온기도 빨리 식는다. 봄날 아침엔 레모네이드처럼 상큼한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지만 가끔은 이른 아침의 찬 공기가 실연당한 사람처럼 창밖에서 서성 거리기도 하는 것이다. 우동과 초밥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수건을 말아 머리에 매고 탱탱한 면발을 그릇에 담는 요리사의 팔 근육이나 나무 도마 위에 초밥을 올려놓는 섬세한 손끝은 때로 눈앞에 놓인 음식보다 더 요리에 대한 신뢰를 느끼게 해 준다. 나는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하다가 봄이 가기 전에 광화문에 한 번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밥도 먹고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시는 오후를 즐기고 싶었다.


광화문은 내게 여러 추억이 있는 곳이지만 세종문화회관의 공원을 지날 때마다 오래전 '세종예술시장 소소'라는 창작자를 위한 마켓에 참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당시 처음 소소 마켓에 참가신청을 하면서 시인으로써 아무런 장식도 포장도 없이 즉석에서 종이 한 장에 시를 써서 팔겠다고 했다. 다행히 세종문화회관 측에서 나를 선정해 주셨지만 실제로 첫날 시장에 나서는 건 사실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니는 무거운 타이프라이터를 배낭에 넣어 다녔다. 나는 다른 셀러들과는 달리 사전에 제작한 책자나 소품 등을 파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타이프라이터와 종이, 그리고 사인을 할 펜과 잉크만 챙겨 다니면 됐다. 사실 당시 나는 출판물 형태로 제작해서 가져나갈 제작비도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용을 그대로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내용에만 충실할 수 있는 방법으로 타이프라이터로 즉석 시를 타이핑해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기발하고 예쁜 디자인의 독립출판물과 소품들이 가득한 마켓에서 나 혼자 작은 테이블에 타이프라이터 하나 덩그마니 올려놓고 앉아있는데 과연 누가 오기나 할까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놀랍게도 내 앞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볐고 자신만을 위한 한 편의 즉석 시를 받아가고픈 사람들이 줄을 섰다. 결국 나는 그해 소소 마켓에서 가장 손님이 많이 오는 셀러가 되었다.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그 자리에서 시상을 떠올려 시를 쓴다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가장 정직하고 정말 필요한 단어들만 사용하게 된다. 나를 찾은 손님이 들려주는 짧은 사연을 듣고 떠오른 시상으로 시 한 편을 즉석에서 타이핑하는 건 무척 신선한 작업이다. 그렇게 쓴 원고는 수 백 번 고쳐 쓴 글을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그건 바다에서 펄떡펄떡 뛰는 활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인 것이다.


사람들은 테이블 위에는 종이와 타자기만 있을 뿐 도대체 무엇을 팔겠다는 건지 상품이 보이지 않는 내 자리가 신기했는지 많은 호기심을 나타냈다. 그렇게 내게 다가온 사람들 중에는 지나다 우연히 나를 발견한 다른 작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내 곁에서 내가 타이핑하는 걸 계속 바라보다가 결국은 내게 다가와 이런저런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 질문이라는 것들이 한결같은 것이어서 난 누군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걸어오면 마치 음식을 앞에 둔 사람처럼 이미 입 안에 대답이 고이곤 했다.

“시를 즉흥적으로 쓰면 아무래도 글의 질이 떨어지진 않나요?”

“시상이 어떻게 그렇게 바로 떠오르나요?"

여러 명의 질문을 정리해 보면 거의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내게 질문을 한 그들은 시인이었고 소설가였으며 지금도 무언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의 행위는 무모해 보이고 위험해 보였던 것이다.


매체는 무엇이고 발표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언젠가부터 그저 매체를 운영할 뿐인 사람들이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창작을 할 자격이라는 것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시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이미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이제부터 시를 써도 된다고 하거나 당신은 아직 안된다며 자격증 같은 것을 선별해 발급했다.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이미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에게 당신을 이제부터 소설가라고 불러주겠다며 거들먹거리거나 너는 아직 멀었다며 훈계했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그 자격증과 훈장 같은 걸 받기 위해 매체가 정한 원칙에 맞춰야 했고, 이미 완성한 원고가 있어도 매체가 정한 날짜를 기다려 투고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 해 선택받지 못한 글들은 수면제를 먹이듯 잠재우고 그렇게 무력하게 해가 바뀌는 걸 보아야 했다.

지금 당신의 서랍 속에는 십 년을 넘은 원고가 혹시 있지 않은가? 어쩌면 당신의 버려진 수첩 속에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한 채 이 십 년을 넘긴 시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십 년 동안 수정하고, 이 십 년 동안 그 작품 하나만 사유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어떤 작품은 서랍 속에서 갇힌 채 다른 이에게 보이지 못하는 걸까. 왜 전혀 모르는 사람의, 그것도 창작을 하는 사람도 아닌 사람들의 허락을 받은 후 자신의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왜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데 남들이 정해놓은 형식에 얽매이고 스스로 관습에 익숙해지는 걸까. 더 빠르고 쉬운 다른 방식도 괜찮지 않을까. 누군가와 타협하거나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방식.

내게도 상자 속에, 컴퓨터 속에 십 년 넘게 잠들고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중에는 이 이야기는 단행본으로 출간해야지, 이 원고는 어디에 투고해야지, 이 시는 시집에 수록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글들이 많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십 년 동안 내가 생각하는 단행본은 출간하지 않았으며, 어떤 원고는 그 어딘가에 발표하지도 않았고, 생각했던 다음 시집을 출판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글들은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다가 운이 나쁘면 아무도 그 존재도 모른 채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맛있는 과자를 먹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과자의 맛을 좋아하는 것이지 어떤 곳의 상표가 새겨진 예쁜 상자의 맛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상자는 먹어봐야 종이 맛 밖에 더 느끼겠는가. 입 안에 들어가는 것은 과자이지 상자가 아닌데 우리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전시회를 하지 못해서 먼지를 덮은 채 세워져 있는 그림, 출간하지 못해서 방치해 두다가 어디 있는지 자기도 찾지 못하는 원고들을 생각한다. 지금 당장 누군가 몇 사람에게라도 보여줘서 그중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작품으로 인해 울거나 웃는다면 그것으로 그 작품의 존재 가치는 있는게 아닐까. 오래전 다음넷 초창기에 칼럼이라는 섹션이 있었다. 그것은 블로그처럼 이웃의 개념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과 그 글을 읽는 독자가 존재하는 일 대 다의 형식이었기 때문에 지금 쓴 글을 지금 당장 퍼블리싱하고 그것을 즉시 독자들이 읽는다는 즉시성이 있었다. 당시 나의 칼럼은 꽤 많은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계셨는데 그러던 어느 날 받은 이메일 한 통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칼럼을 계속 읽고 있다는 그분은 어느 날 내가 쓴 글을 읽고 내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편지를 쓰게 되었다며 사연을 말씀하셨다. 나는 편지를 읽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날이 그분이 생을 스스로 마감하려고 결심하고 실행하려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날 내가 쓴 글이 삶의 희망에 관한 글이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기운을 내서 살아보겠다며 내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우연히 그날 아침 떠오른 단상을 쓴 글을 그 즉시 올렸는데 그걸 그 시점에 본 한 사람이 내 짧은 글 한 편으로 다시 살기로 결심하는 결과를 낳았다니. 나는 나도 모르게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셈이 된 것이다. 내가 만일 그 글을 어딘가에 보내고 어딘가에서는 자신들의 일정에 맞추려고 일 년 이상을 묵혀버렸다면 그 글은 그날 생을 마감하려던 그분이 읽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 사람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글을 쓴 사람이라는 점에서 글을 쓰는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세종예술시장 소소 마켓에 나가면서 세종문화회관 공원에서 총 오십여 편의 시를 썼다.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내게 시를 요청했다는 뜻이다. 그 시들은 적어도 각각 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다. 오래전 인도에 머물 때 하루에 네 편 정도의 시를 쏟아냈던 이후 나는 하루에 한 편의 시도 쓰기 힘들었는데 하루에 평균 여덟 편 이상을 썼다는 건 그 시의 완성도를 떠나 내겐 상당한 의미가 있다. 내가 마켓에서 쓴 시가 시집 반 권은 채울 수 있는 분량이라는 걸 깨닫고 나는 그간 게을렀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 손을 떠난 오십여 편의 시는 어쩌면 단 한 사람에게만 읽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잉크도 마르지 않은 채 그 들의 손에 들려진 그 시가 어떤 이의 가슴에 작은 떨림 하나 느끼게 해 주었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 그건 날 것이니까. 날 것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회는 시간이 지나면 먹을 수 없다.


책을 읽는 사람의 얼굴은 아름답다. 하지만  사람이 감동하는   책의 장정이 아니라 글일 것이다. 그러므로  글이 설령 책이 아니라 담뱃값에  메모라 할지라도 글의 내용만으로 똑같이 감동할  있는 것이다. 나는 코펜하겐의 어느 카페에서 어느  작곡가 후배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이런저런 노력을 해도 그때에는  곡에 반응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최근 만든 곡은   사람을 위해 만든 곡이에요. 형도 아는 사람,  전여친이요. 그렇게 그녀만을 위한 개인적인 곡을 만들었더니 이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많은 사람을 위한 곡을 만들었을 때는  사람도 공감하지 않더니  사람을 위한 곡을 만드니까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거죠.  곡은 심지어 제대로 편곡하지도 않고  거칠게 녹음한 거를 정식 출시  하고 그냥 온라인에서 공개한 거예요."


서랍 속에 십 년 넘게 잠자고 있던 바삭바삭한 종이들을 꺼내 그것이 날 것이었던 순간을 기억하려 애쓰는 아침이다.



/ 글, 사진. 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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