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는 것들이 모여

<아주 당연한 인생의 12가지 사실>_#2

by 희성
000이가 뺏어갔어

엄마가 내 어릴 적에 대해 가끔 하시는 얘기가 있다. 엄마가 나와 동생에게 바람개비를 만들어 주시면 동생은 놀다가 제 것을 망가뜨리고 내 것을 뻣았아 갔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엄마께 울며 와서 동생이 내 바람개비를 가지고 갔다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면 내가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들은 서운함을 느낄 것으로 생각했다. 아마 바람개비를 뺏겼을 때 하소연을 했던 이유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장난감이지만, 어릴 때는 아주 소중한 것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별것 아닌 장난감이 소중했던 만큼이나 별것 아닌 칭찬에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과학 시간이었다. 물과 식용유 채운 플라스크에 (아마) 비비탄 총알을 넣고 어느 플라스크에 넣은 총알이 더 빨리 떨어지는지 관찰하는 실험이 있었고, 실험을 수행하기 전 각자 생각하는 가설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실험 전부터 친구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 다들 끈적한 기름이 든 플라스크보다 물이든 플라스크에서 총알이 더 빨리 떨어질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하지만 창피하게도 나는 답을 몰랐었고 '반론은 없냐'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기름이 미끌미끌해서 더 빨리 떨어질 것 같다는 멍청한 대답을 했다.


역시나 실험 결과는 멍청한 내 대답과는 반대였다. 그런데도 이 창피한 기억을 아직도 하는 이유는 선생님께서 '과학에는 언제나 반론이 필요하다'라며 답을 맞힌 것보다 더 큰 칭찬을 해주셨던 것이 정말 감사한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을 아직도 하는 별 볼 일 없는 나는 참 어리석어 별것 아닌 일에도 많이 흔들린다. 무언가 배우고 깨달은 것 같은 순간이 있어 삶이 변화된 것 같아도 곧 쉽게 잊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보다 더 어리석은 생각은 나에게는 더욱 큰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꿈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도 그랬다. 내가 별 볼 일이 없는 사람이라 내가 하는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후회만 가득했고, 그래서 돌아볼수록 꿈을 잃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야 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소한 어릴 적 일기에서 위로를 받았다. 심지어 거기엔 아주 작지만 내 꿈의 단서들이 있었다. 그때는 꿈인지도 몰랐으며, 다시 꺼내 보지 않아서 나중에 돌아보았다면 더욱더 작게 느껴졌을 어릴 적 꿈의 조각들이 있었다.


11살 때의 일기

아직도 기억나는 칭찬을 해주신 담임 선생님을 두었을 적 쓴 11살 때의 일기다. 성인이 되어 다시 본 어릴 적 일기에서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순수'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적고 거기에서 느낀 점이 참 때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기도 그렇다. 연탄재를 뿌렸다는 저 작은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별 볼 없는 행동으로,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뿐더러 알아줄 필요도 없다. 그런데 어렸을 적에 이런 작은 일에 뿌듯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음에도 뿌듯함을 느끼고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힘든 순간에 되돌아본 어릴 적 일기엔 별일은 없었다. 그러나 사소한 것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꿈과 조그만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겼던 어린 마음 때문이었다. 별 볼 일 없는 것마저도 소중하게 여겼던 순수한 마음 덕분에 잃어버렸던 것 같은 꿈을 찾았고 행복과 위로를 받았다.


내가 별 볼 일 없다고 느껴질 때가 오면 가끔은 자신이 별 볼 일 없다고 여긴 일을 꺼내 보는 것은 어떨까. 거기엔 아주 작지만 때 묻지 않은 꿈과 행복과 위로가 있다. 그리고 작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위로를 준 것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작은 행동 하나가 많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었듯이, 우리들의 작은 도움 하나하나가 모인다면 더 많은 사람이 편해지지 않을까.


별은 작디작은 수소 원자 4개가 뭉쳐 헬륨을 만들어내며 엄청난 빛과 열을 낸다. 우리도 뜨거운 마음과 별 볼 일 없는 작은 기억을 소중히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젠가 별처럼 빛날 수 있지 않을까. 또 우리들의 작은 도움이 모인다면 언젠가 세상을 빛낼 수 있지 않을까.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모여 별처럼 빛을 낼테니.


아주 당연한 인생의 12가지 사실 중 두 번째

꿈도 행복도 위로도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