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위대함

<아주 당연한 인생의 12가지 사실>_#3

by 희성
그냥 걸어와


나는 익숙함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누구나 두려워할 만한 문제에서부터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까지 별것에서 다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아주 어릴 적엔 내 그림자를 보고 무서워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릴 적 두려움 중 하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축구를 하러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탈 때면 버스 번호를 보고 항상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버스가 축구장까지 가는지를 물어봤다. 바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내버스를 잘못 타서 헤메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고등학교 시절 축구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밤에 버스를 잘못 타 헤맨 적이 있다. 분명 노선도를 보고 탔는데(주말에는 다르게 운행한다는 글씨를 못 봐서), 버스가 집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고,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아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렸다.


문제는 그렇게 내린 곳이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실 수 없냐고 여쭸더니 그냥 걸어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그렇게 집에 걸어가다 눈에 띈 순댓국 집에 들어가 처음으로 음식점에서 '혼밥'을 해 본 날이기도 했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는 것조차 두려웠던 나에게 스무 살에 시작한 서울 생활은 두려움 그 자체였고, 역시나 대중교통은 고역이었다. 처음 지하철을 탈 때 어느 역 행인지 몰라서 반대로 탄 적도 꽤 있었으며, 혹시나 내릴 곳을 놓칠까 봐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버스는 잘못 탈까 봐 목적지까지 더 걷는 한이 있더라도 아예 타지를 않았다.


이런 나에게 성인이 되어서 가장 큰 두려움은 편입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학점은행제에 재학하며 편입 시험을 준비하려면 우선 학위를 취득해야 했고, 2년간 140학점을 채우기 위해 강의 수강하는 것과 각종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응시하는 것은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편입 시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으로의 인생의 각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시험인 데다 다른 시험과 달리 워낙 변수가 많고 떨어지면 또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물론 두려움의 가장 큰 원인은 믿을 수 없는 내 실력이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실력을 기르려 노력한다고 해서 두려움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Nike: Find Your Greatness 광고 캡쳐

감사히 두려움을 넘길 수 있었지만, 새롭게 시작한 대학 생활 역시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아마 성인이 돼서 전학을 간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남들보다는 다소 늦게 시작한 캠퍼스 생활에 신입생도 아닌 편입생으로의 시작은 마치 스스로 '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다시 한번 감사하게도 훌륭한 교수님들께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학과 사람들 역시 친절해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어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로웠던 두려움에 익숙해질 무렵 수강한 전공 강의에서 하루는 교수님께서 두려움과 관련해 "두려움의 실체는 양파와 같다. 계속 벗기면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 영상을 하나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과 문구가 있다.


'Greatness is a scary thing Until it isn't' / 위대함이란 두려운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까지는.


언제나 그러하듯 인상 깊이 감동해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은 순간엔 '이제부터 내 인생은 변화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그 이후엔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다. 두렵고 새로운 것보다 편하고 익숙한 것을 찾았고 주저하기도 많이 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처음엔 넓게만 느껴졌던 캠퍼스가 좁게 느껴졌던 순간을 뒤로하고 졸업을 했다. 이제는 혼자서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좋고 나쁨이 아닌 그저 객관적인 사실임에도 두려움 그 자체로 다가왔다.


커스 다마토(왼쪽)과 마이크 타이슨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로 혼자 두려움을 감당하는 듯한 순간에 보게 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리고 아래는 이 일화의 관련된 인물이 한 유명한 말이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이 말의 주인공은 마이크 타이슨이다. 그는 ‘핵주먹’으로 불리며 세계 최고 복서들의 전성기를 논할 때 어김없이 언급되는 선수다. 나도 몇 번 계획이 틀어지는 펀치를 맞아 힘든 상황에서 더욱 공감이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아주 뼈저리게 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앞서 말한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은 타이슨이 아니다. 이 일화의 주인공은 '핵주먹' 타이슨의 마음을 녹아웃 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타이슨보다 강한 선수가 아니다. 어릴 적엔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으며 점점 삶의 이유를 놓아가고 있는 백발의 노인이자 타이슨의 스승인 커스 다마토에 대한 얘기다.


죽음을 기다리던 커스는 새로운 제자 타이슨을 만나고 새로운 삶의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 새로운 제자를 맞이한 커스는 타이슨이 천성적으로 두려움이 많은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위대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 타이슨에게 잠재된 능력을 전부 끌어낼 수 있도록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는 법을 가르친다.


커스는 타이슨의 두려움이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도록 욕설이 난무하고 담배 연기가 자욱한 술집 복싱 시합에 타이슨을 출전시켰고, 타이슨은 이러한 살벌한 비공식 경기에서 출전하며 자연스럽게 담력을 길렀다. 그리고 이렇게 길러진 담력은 타이슨이 프로 데뷔 후 최연소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타이슨을 길러낸 커스가 한 두려움과 관련한 위대한 격언이 있다.


두려움은 친구이자 적이며 마치 불과 같다. 두려움을 다룰 수 있다면 그것은 너를 따뜻하게 만들지만, 그렇지 못하면 너와 네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초원을 달리는 사슴을 상상해라. 반대쪽 덤불 속에 퓨마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사슴이 느끼는 두려움은 곧바로 생존을 위한 자연의 섭리로 작용한다. 평소에는 5~10피트만 뛸 수 있었던 사슴이 두려움 때문에 15~20피트를 뛰게 된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두려움이 없으면 죽는다. 두려움은 우리를 싸우도록 일으키는 자연의 힘이다. 영웅과 소인배가 느끼는 두려움은 같지만, 다만 영웅만이 그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설 뿐이다.

세상에는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혹은 해보니 의외로 쉬운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대중교통 이용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혼자서 방방곡곡을 다닐 수 있다. 편입 시험을 다시 보라면 다시 볼 수 있다(물론 어렵겠지만). 학교에 다시 입학해 다니라면 더욱더 재미있고 열심히 할 자신이 가득하다.


하지만 처음엔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나 처음이라는 순간의 두려움은 너무나 당연하다. 일단 처음엔 두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생이 펼쳐지는 이 세상에는 두려운 것들과 일투성이라는 현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두렵다고 주저하지는 말자. 만약 사슴이 두려움에 떨며 달리기를 주저하고 제자리에 머문다면 곧바로 퓨마의 먹이가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두려운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이 우리가 더욱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순간이 된다. 그렇게 더 큰 능력을 발휘해 두려운 순간을 지나 보내고 나면 나중엔 별것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순간이 우리가 두려움이라 여겼던 위대함에 한 발 더 다가가는 순간이다.


새로웠던 것에 익숙하다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위대함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요소다. 아직도 새로운 것이 두렵다면 여전히 위대해질 수 있다는 반증이다. 위대한 사람이 아니기에 매 순간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매 순간 위대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아주 당연한 인생의 12가지 사실 중 세 번째

위대하지 않은 우리가 느끼는 익숙함과 두려움은 우리가 위대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Nike: Find Your Greatness>

https://www.youtube.com/watch?v=WYP9AGtLv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