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싫어하는 학생이었던 나는 항상 공부 빼고 모든 일이 재밌었다. 특히나 시험 기간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재미를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만약 학교가 없어진다면'이라는 주제로 쓴 에세이에 공부가 하기 싫은 이유를 에둘러서 구구절절 적었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듯합니다. 저 역시도 학교 가기가 귀찮아지는 아침이면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가 사라진다고 교육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지금, 교육이 없이는 사회에 적응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지구를 움직이는 유대인들 역시도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랍비와 부모가 죽을 위기에 있다면 랍비를 구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학교의 존재 여부가 아니고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느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과연 우리가 받는 교육은 어떤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열이 뜨거운 우리나라에서 학교가 없어진들 분명 빠르게 학교를 대체 할 기관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교육을 받고 있으며, 또한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할까요? 이제 여기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받는 교육은 무언가 모순점이 많습니다. 어릴 때 배워오던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말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로 바뀐 듯합니다. 공부 잘하는 게 효도라는 식이며,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불효자가 됩니다.
정작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부모님 얼굴을 뵙는 시간이 적습니다. 또 어떤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공부를 못하면 속된 말로 ‘인망새’ (인생 망한 X끼), ‘엠생’(X창 인생)합니다. 물론 장난이겠지만, 이런 말을 듣고 말하다 보면 공부 못하는 학생이 '인망새' 되고, '엠생' 되는 것이 진짜처럼 여겨집니다. 또한, 초중고 교육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미성년자라서 투표도 할 수 없고, 술도 담배도 살 수 없고, 운전도 할 수 없지만, 학교에선 ‘지금이 너희들의 인생을 결정한다’라고 말하면서 무거운 책임감을 안깁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이런 교육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많은 학생이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할까요? 간단히 말해서는 많은 학생들이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 교육이고, 더 나아가서는 커서도 행복하고, 남까지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교육입니다. 대학까지 나와서 백수가 되는 교육이 아니어야 하고, 일하지도 않고 배부른 사람이 있는 반만, 뼈 빠지게 일해도 배고픈 사람이 있는 현실을 보고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가족들과 다 같이 식사하는 일이 드물어지는 교육이 아니어야 하고, 학원, 문제지, 과외 등으로 '교육이 사업화되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 받는 교육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 8시 40분까지 학교에 가 밤늦은 9시 40분, 더 늦게는 11시, 12시까지 공부만 하는 우리들보다 8시 20분에 학교에 가 3시에 끝나고 친구들과 운동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저녁을 가족들과 함께 먹는 학생들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학교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주제가 우리들이 처한 교육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이 글을 다시 보고 '어렸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자기가 처한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그럴듯한 말로 ‘우리나라 교육은 문제다’라고 말하는 모양이 웃겼다. 왜냐하면 정작 이렇게 말한 본인은 아버지의 뜻과는 반대로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했고,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면서도 고교 3년 개근을 기록했다. 이처럼 나는 교육이 모순이 많다고 말하면서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적인 학생이었다.
다만 단순히 공부가 싫어서 이런 에세이를 쓰게 된 것은 아니었다. 교육 현장에서 충격과 관련된 고민에서 비롯된 이유도 있다. 선생님들께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듣는 과정에서 여러 번의 크고 작은 충격들이 있었는데, 그 중 아직도 기억이 나는 3가지 충격이 있다.
첫 번째 충격은 중학교 2학년 당시 영어 선생님께 받았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요즘엔 연봉 5천이 안 되면 결혼이 어렵기 때문에 공부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두 번째 충격은 고등학교 때로 한 선생님께서는 '성적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결국 지금의 행복은 성적 순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또 다른 선생님께서는 '나도 이 시스템이 비정상적인 것을 안다. 그러니 여러분이 공부해서 시스템을 바꿔라'라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셨다.
세 분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 맞는 말이고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러나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공부가 싫었음에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몰랐던 내게 세 분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결코 합당하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삶이 다 다르기에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우리는 정작 어린 나이에서부터 각종 시험을 치며 정답 찾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시험의 정답을 찾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 되어버린다.
시험의 정답을 찾는 것이 인생의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이라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자 미래의 행복을 위한 것일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경우를 살펴보면 주객이 전도된 경우가 많듯이, 우리의 교육은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 있다.
그래서 이 문제 속에서 20살이 되지 않는 학생들이 성적에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이 이해되질 않으며,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목숨을 끊은 학생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이 시스템이 학생들을 죽이는 것을 고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과 삶이 소중한데, 교육 현실 안에서 지쳐 스스로 소중한 목숨을 끊어버리는데 이것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기만 할 뿐 다시 시스템이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현실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건 그 학생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문제일 뿐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교육에서 자라난 사회도 마찬가지다. 'OECD 평균 자살률이 높아 문제다'라고 말하면서도 통계 속에서 한 사람의 몫은 개별성이 떨어져 주목받지 못하고, 결국 무관심 속에 시스템이 삶을 덮어버린다.
매 순간의 사소한 영향들은 인생의 각도를 좌우한다. 너무 사소해 당장 보기에는 각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지금 사소한 각도의 변화는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본다면 다시는 걷잡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영향이 되어버려 있다.
하물며 인생의 각도를 좌우하는 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교육은 지금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말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일까. 공부하는 이유가 나중에의 행복을 위해서,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런데 무엇이 현실일까.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현실을 저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를 특이하게 여겨 방치하는 것이 현실일까.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답은 모를뿐더러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다. 어른이라면 학생들이 답을 찾기 위한 교육에 치우쳐 인생의 각도가 틀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주 당연한 인생의 12가지 사실 중 다섯 번째
교육은 정해진 정답대로 각도를 맞춰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각도로 가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