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되면 안 되는 꿈

<아주 당연한 인생의 12가지 사실>_#6

by 희성
이사 : 사는 곳을 다른 데로 옮김

한 학기를 마칠 때마다 기숙사 퇴사 날에 짐을 뺀 텅 빈 방을 볼 때면 무사히 학기를 마쳤다는 후련함과 함께 묘한 허탈감과 쓸쓸함을 느꼈다. 그리고 최근엔 이런 감정과 비슷한 느낌을 방송을 보면서 느낀 적이 있다. 연예인들이 일상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이었는데, 모 배우가 몇 년 동안 살던 집에서 이사하기 위해 짐을 빼고 우는 모습에 동감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이란 곳은 단순히 건물이라는 의미를 넘어 거기에서 지낸 세월의 희로애락이 담긴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를 하기 위해 짐을 다 빼고 나면 비로소 집에서 살아온 그동안의 세월과 담아둔 감정 등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다. 처음 새로운 집에 대한 기대와 설렘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감정들과 느낌들만을 그대로 볼 수 있고, 그 기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마치 정든 친구와 헤어지는 슬픈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런 감정은 일생에서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숙사나 자취방에 사는 것을 제외하고 한 가족이 집을 옮기는 경우는 부모님의 직업 특성이 아니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기숙사의 짐을 빼는 것 외에는 흔하지 않은 그 경험을 자주 했다. 다만 부모님의 직업 특성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집에 대한 추억이 많다. 재래시장 한쪽에 있는 지금 집에 이르기까지 꽤 자주 집을 옮겨 다녔다. 잘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아주 어릴 때 살았던 집에서 동생과 개집에 들어가 놀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는 기억이 나는데, 유치원 시절 살던 두 번째 집은 5층짜리 작은 아파트(?)로 엘리베이터 없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우리 집은 제일 꼭대기 층이었다. 그리고 경사면에 주차했을 때 차 바퀴가 헛돌아 휴지를 대고 빼는 것을 꽤 자주 본 기억이 있다.


그다음 세 번째 집은 단칸방 집이었다. 여기서는 문고리에 실을 묶어 이를 뺀 기억도 있고, 부모님이 새벽기도에 나가셨을 때 울던 동생을 달래주지 못한 미안한 기억도 있다. 그리고 재래식 화장실에 아끼던 팽이를 떨긴 슬픈 기억이 있고, 지나가시던 스님께 동생과 같이 합장을 드리고 뭔가 뿌듯했던 기억도 있다.


네 번째 집은 학교 문구점 근처 집으로 여기선 옆집에 살던 동생이 너무 자주 놀러 와 짜증 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우리 집 위에 있던 주인집 손녀딸과 동생이 같은 반 친구 사이여서 함께 장난치며 놀다 다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여기엔 손녀딸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주인집 할머니한테 혼나 눈치를 본 기억이 있다.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선 다섯 번째 집은 마당이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할머니가 같이 사시게 됐다. 또 이 집에선 마루 앞문의 처마 밑에 제비집이 있어 제비 똥이 떨어지지 않게 나무판자를 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강아지를 보겠다며 친구들이 몰려왔던 것에 대해 일기에 쓰기도 했다.


그다음 집은 반지하였다. 여기선 어쩌다 집에 놀러 왔던 친구가 어머니의 된장국을 먹고 맛있다며 학교에서도 계속 말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가야 했었다. 그러고 나서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장 한쪽에 있는 집에 살게 되었다.


평생을 한 도시 안에서 살면서도 떠돌아다니는 삶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에는 꽤 재밌는 모험 같았다. 다만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한 이유는 몰랐고 전부 이렇게 이사를 자주 다니며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왜인지 모를 이유를 커가며 알아가게 됐고, 이렇게 이사를 자주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런 이유와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삶이 재밌는 모험이 아니라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만 생존하는 와중에도 사치스러운 소원은 있었다. 첫 번째는 화장실이 집 안에 있었으면 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밤에 화장실을 갈 때면 꼭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시골집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무서워서 떨었고, 겨울엔 추워서 떨었다.


두 번째는 내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세 번째 집에 살았던 11살부터는 장남이신 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면서 서로 공간을 공유해야만 했다. 그래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개인적인 공간이 없었다.


시장에 있는 지금 집에서도 잠을 잘 잤으면 하는 소원은 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격하게 공감되는데, 장사할 때 들리는 소리와 밤에도 반짝이는 네온 불빛, 그리고 가끔 야시장이 열리면 늦은 밤까지 술잔을 부딪히며 떠드는 소리는 시끄럽다. 더욱이 술주정 부리는 소리는 시끄러운 정도를 넘어 버린다.


그래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어느 곳과 어느 것에서든지 배울 것이 많다고 애써 생각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아침부터 부지런히 장사를 준비하시는 상인분들의 모습은 게으른 나에게 큰 귀감이 된다고 여기고 있다.


내가 다양한 집을 옮겨 다닌 것처럼 오래전부터 주거 형태는 참 다양하게 변화했다. 우리에게 체감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선사시대 동굴, 움막, 움집부터 조금은 알 것 같은 초가집과 기와집, 그리고 지금의 아파트와 주택, 빌라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만 형태가 변하는 와중에도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은 언제나 변함없이 존재했다. 건물은 계속해서 넘치도록 생겨나고 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은 로망이다. 하물며 내 집은 고사하고 그나마 남의 집에서라도 살 수 있으면 다행이다. 아직도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배개 삼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다 보면 사람이 집을 선택하는 것인지 집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요새 들어 더 내 집에 대한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누군가는 집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서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높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 기준이 높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사람들에게 건물이 필요한 것인지 희로애락을 담아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내 집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무엇이 맞는 말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이 상황은 답을 찾기 어려운 시험 같기도 하고, 아니면 문제가 잘못되어 원래 답이 없는 시험 같기도 하다. 다만 풀기 어렵다면 다 같이 머리를 맞대면 되고, 원래 답이 없는 문제라면 문제를 수정하면 된다.


위의 문제는 진짜 큰 문제가 아니다. 풀기 어려운 문제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더 큰 문제다. 알 수 없는 사실은 이 문제는 너무나 쉽지만, 이상하리만큼 오답률이 높다. 간단히 풀 수 있음에도 일부터 틀리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왠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틀리고 싶은 생각을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 꿈을 꿀 수 있어야 할 공간이 꿈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꿈으로 돈을 낳고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생각을 고쳐야 비로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볼 수 있다.


이미 우리에겐 이 문제 말고도 손 쓰기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간단히 풀 수 있는 이 문제를 일부러 틀렸다가는 안 그래도 어려운 시험을 망쳐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 우리가 일부로 틀리는 풀기 쉬운 문제는 정답을 거저 주고 있는데.


아주 당연한 인생의 12가지 사실 여섯 번째

꿈을 꾸어야 하는 공간이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