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꿈

<아주 당연한 인생의 12가지 사실>_#8

by 희성
피아노 치면 낫는다

어릴 적 집에 사촌 형들이 놀러 오면 엄마는 피아노 반주를 하시며 우리에게 합창을 시키셨다. 그러나 몸을 쓰며 놀아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애들에겐 강제로 불러야 하는 노래는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엄마는 본인이 반주하시던 것을 넘어 내 진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도움은 안 될뿐더러 시간만 빼앗는 피아노를 배우게 하셨다. 그래서 공부하기를 싫어했던 내가 피아노 배울 돈으로 차라리 수학 학원에 다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물론 피아노 배우기가 잠깐 좋았던 순간도 있었다. 9살 때 처음 배우다 그만둔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을 때다. 다만 이유는 피아노가 좋아서가 아니라 피아노를 배운다는 핑계로 씨름을 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종례 뒤에 당시에는 덩치가 좋아 보였던 나와 친구 한 명을 불러 학교 씨름장 옆에서 열리는 행사에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영문도 모르고 행사에 가게 된 우리는 학교 선생님들과 거기 계시던 어른분들의 선물 공세를 받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떨결에 씨름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씨름을 그만둘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은 덩치와는 반대되는 내 실력이었다. 언젠가 밀어내기식 경기를 통해 이긴 사람은 남고, 진 사람은 나오게 되는 게임을 했었는데, 승부에는 역시 무언가가 걸려야 했고 사투리를 쓰던 코치는 진 사람의 엉덩이를 나무막대로 한 대씩 툭 때렸다. 그리고 그날 나는 꽤 많이 맞았다. 다만 분위기는 다들 엉덩이 한 대쯤 툭 맞는 것에 대해 별 반발심이 없는 나름대로 유쾌한 분위기였다.


다만 이렇게 맞은 까닭에 내 엉덩이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신기한 것은 이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가 몸 검사를 한다며 멍이 든 내 엉덩이를 보게 됐고 그날부로 씨름을 그만두고 동생과 함께 엄마의 지인분이 운영하시는 피아노 교습소에 등록했다.


얼떨결에 시작한 씨름처럼 내가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내 뜻은 아니었다. 아무튼 피아노는 씨름을 그만둘 수 있게 해준 핑계가 됐고, 그래서 코치께도 피아노를 이유로 씨름을 관둔다고 말씀드렸다. 물론 그 뒤로도 코치는 나를 마주칠 때면 '니 씨름 다시 안할끼가?' 하며 몇 번이고 나를 회유하셨지만, 피아노가 나를 지켜준 덕에 다시 씨름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를 지켜준 피아노가 점점 씨름과 같은 존재가 됐다. 그때 나에게 피아노는 씨름을 관두게 해준 수단이었을 뿐, 내가 배우고 싶다거나 해서 배운 것이 아니었다. 지루한 하농과 클래식을 40분간 좁은 방에 갇혀 혼자 치다가 선생님께 검사를 받는 것은 흥미가 없었다.


또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혹은 운동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쳐도 엄마는 '피아노 치면 낫는다'는 말을 하며 병원 대신 학원에 가라는 말씀을 하실 뿐이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려고 피아노 학원을 빠진 것은 당시의 나에게 가장 큰 일탈이었다.


더욱이 한살 두살 먹을 때마다 피아노 학원에 또래 남학생은 점점 없어져 갔다. 그래서 친구들은 관심도 없는 피아노를 배운다는 사실이 괜히 창피했다. 그리고 이건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하교할 때 같은 방향으로 가는 친구들은 내가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학원의 이름을 부르며 나를 항상 놀렸다.


물론 위의 이유가 피아노를 배우기 싫었던 진짜 이유는 아니다. 피아노 배우기가 싫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전공목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었지만, 엄마는 공부하라는 말 대신 항상 '피아노만 치면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엄마는 내가 뭐를 하고 싶어하는지와 학교 성적이 평균 위아래를 넘나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피아노였다.


마녀 배달부 키키(1989)

이렇게 싫었던 피아노를 배워서 좋은 점이 없지는 않다. 심심할 때는 놀이가 되고 무엇보다 학창 시절부터 주구장창 보고 자라서 여전히 생각이 날 때마다 보는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OST를 연주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마녀 배달부 키키'에는 좋은 OST가 많다. 언젠가 내가 살고 싶은 곳인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라는 곡을 비롯해, 향수를 자극하는 '엄마의 빗자루'라는 곡도 있다. 그리고 좋은 곡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가족의 품을 떠난 견습 마녀 키키가 새로운 마을을 찾아 머물며 생기는 일을 다루고 있다.


새로운 마을에서 살 곳도 없고 빗자루를 타고 나는 것외에 딱히 마땅한 재주도 없는 키키는 친절한 빵집 아주머니의 집에 머물며 가게를 보기도 하고 빗자루를 타고 날며 마을 사람들의 배달원을 자처한다.


점차 마을 생활에 적응할 무렵 키키는 문득 자신의 처지에 권태와 회의를 느낀다. 집에 대한 그리움에 가득찬 키키는 맑은 보름달이 뜨던 날 집을 떠날 때 엄마가 주신 빗자루를 보며 향수를 느낀다. 키키의 향수를 자극하는 엄마의 빗자루는 키키가 만든 뻣뻣하고 작은 빗자루보다 더 크고 오래되어 길이 잘 들어 있는 빗자루다.


빗자루를 가지고 있던 키키의 엄마 역시 마녀다. 한 때 그녀도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녔지만, 13살이 되어 들뜬 마음으로 설렘 가득한 모험을 떠나는 키키처럼 하늘을 날 일이 더는 없다. 단지 정착한 마을에서 가족을 꾸리고 약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는 삶을 산다.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각자 꿈의 모양과 크기는 다를지언정 적어도 한 가지 이상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물론 표출되는 방식은 다르다. 꿈일 수도 있고 욕구일 수도 있고 욕망일 수도 있다. 다만 이 세 가지 모두 본질적으로는 무언가 이루고 싶다거나 갖고 싶다는 점에서 같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 꿈 때문에 너무나 큰 혼란에 빠졌었다. 진로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부족했던 탓으로 졸업 후에야 하게 된 뒤늦은 고민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늦어버렸다는 생각만 들게 할 뿐이었다. 이룰 수 있는 꿈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휘청거리는 나와 달리 엄마는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이셨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엄마는 어쩜 저렇게 변함이 없으실까' 하는 생각이었다. 도대체 어떤 꿈을 이룰 수 있으시길래 흔들림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꿈이 없는 쪽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아오셨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여군이 꿈이었는데, 키가 작아 못했다'라고 말씀하시는 엄마는 빗자루를 많이 만지신다. 물론 엄마가 마녀는 아니지만.


'피아노만 치면 된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시던 엄마는 이제는 '내가 너희를 섬겼듯이 너희도 누군가를 섬겨라'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처음엔 엄마가 진짜로 나를 섬기셨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서서히 집을 떠날 준비를 하는 순간에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여정을 앞둔 키키의 엄마의 자기에 빗자루를 건네는 것처럼 우리 엄마가 내게 주시는 빗자루는 나를 위한 섬김이었다.


언젠가 엄마가 봉투에 학원비를 담아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을 때, 봉투를 열어보면 분명 수강료가 한 학생의 몫이었다. 어렸을 때는 왜인지를 몰랐다. 커가며 절반의 수강료는 엄마의 면목 값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나를 극구 말리시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 어머니가 꿈으로 인해서 흔들리지 않으셨던, 아니 무척이나 흔들림에도 사라지지 않는 꿈이 있기에 꿋꿋이 버티며 최선을 다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나였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어쩌면 피아노는 못 이룬 어머니의 꿈의 한 조각이었고 그 조각이 나에게 박혀 그토록 아팠나 보다.


이런 조그마한 단서들을 통해 돌이켜 본 엄마의 섬김은 자녀들을 위해 한없이 본인을 희생하신 어머니 당신의 삶 자체였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점차 꿈을 다 이뤄가는 것 같은 순간에 가족이라는 새로운 꿈을 꾼다. 렇게 가족은 내가 이룬 꿈의 위에서 새롭게 자고, 사람들은 새롭게 자라난 가족이라는 꿈을 위해서 다시 최선을 다하게 된다.


물론 부모가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의 조각을 자녀에게 억지로 들이밀거나 자녀의 꿈을 조각내려 하면 서로 아프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부모가 자신의 꿈을 자녀에게 강요해서도 조각내려고 해서도 안 된다. 다만 자녀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할 뿐이다.


하지만 자녀들도 한 가지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듯이 어머니들은 언제나 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주 당연한 인생의 12가지 사실 중 여덟 번째

내가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듯, 어머니도 나라는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