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 :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진부한 장면이나 판에 박힌 대화, 상투적 줄거리, 전형적인 수법이나 표현을 뜻하는 용어
역경을 극복하는 소설엔 전형적인 클리셰가 있다. 가난한 집의 철없는 어린 아들은 또래보다 많은 아버지의 연세와 초라한 직업을 남들에게 소개하기 창피해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혼자 속으로 원망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얘기하기를 꺼려하는 성격이 되어 주위 사람들에겐 굉장히 무뚝뚝한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아버지를 창피해하던 어린 아들은 커 가며 이런저런 일에 치이다, 문득 지금의 자신과 똑같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을 위해 무한한 헌신으로 희생하셨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역경을 극복하고 아버지께 효도하게 된다.
어디선가 많이 본 클리셰다. 첫 작품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결코 참신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클리셰가 내 주변 사람의 이야기라면 혹은 내 이야기라면 지루할 틈이 있을까. 삶이 행복하지는 못할망정 차라리 지루했으면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한 번은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오신 적이 있는데, 아버지를 본 친구들이 할아버지냐고 물었다. 그리고 집에 가 아버지께 이 얘기를 들려드리니 겸연쩍게 웃으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남들 눈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어린날엔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고,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고, 무슨 일이든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몰랐다. 굳이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됐다. 오로지 관심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런데 커 가면서 점점 이것저것 알아가고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될수록 내가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은 굉장히 초라했다. 내 또래의 아버지들보다 많으신 연세와 그 반대로 또래의 아버지들에 비해 낮은 학력,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직업은 초라함의 극치였다.
아버지는 연탄 공장 노동자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그저 TV에서 누가 기부를 했네 어쩌네 하는 그 연탄을 찍어내시는 아버지의 직업이 너무 창피했다. 누군가 내게 아버지의 직업을 물어볼 때면 에둘러 기계를 다루신다고만했다.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창피함과 더불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겨울을 나기 위해 집에서 난로를 때느라 필요한 연탄을 나르는 일과 다 타버린 연탄재를 내다 버리는 일이었다. 집으로 연탄을 나를 때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불편했고, 연탄을 옮기다 한 두장 깨지기라도하면 아들이 힘들게 일하는 상황보다 몇 백 원 하지도 않는 시커먼 것을 아까워하는 아버지가 싫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는 유명한 시를 배울 때 내 마음속엔 감동보다는 울화가 치밀었다. 시인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연탄재를 버리는 일이 너무도 싫어서 연탄재를 발로 차고 가루가 될 때까지 밟은 적도 꽤 있었다.
한때 아버지와 야구를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적도 있었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이 소원은 시간도 돈 때문도 아닌 아버지의 다친 왼팔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왼팔에는 손목 위로 10cm 정도가 뼈 대신 쇳덩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글러브를 끼고 공을 받아야 할 왼손을 잘 구부리시지 못해 나와 야구를 하실 수 없었다.
한 번은 아버지 일터에 간 적이 있었다. 공장에서 때는 연탄난로가 꺼지지 않게 갈아줘야 하는 일이 있는데, 여기에 붙은 추가 수당을 위해 겨울이면 아버지는 자주 공장에 가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보게 된 아버지 일터의 풍경은 매우 낯설었다. 상투적이지만 정말로 TV에서만 보던 것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추가 수당을 위해 아버지가 연탄을 다 가시고 본인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겠다며 공장 내부로 잠깐 따라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몇 개의 버튼과 레버를 다루시자 굉음을 내며 빈 기계가 가동되었다.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거대한 기계를 자신이 작동시킨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죄송스럽게도 그 순간 내 머릿속엔 탄가루가 가득한 이 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듯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나의 감정과 생각은 오로지 창피함, 짜증, 서운함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사건들은 이런 생각들을 송두리 째 바꿨다.
사람은 살면서 크게 두 가지 범주의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정된 일처럼 마주하게 되는 사건이고, 나머지 하나는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갑작스레 마주하게 되는 사건이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셨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버지는 사회에서 정해 놓으신 정년이 되셨다. 또 점점 연탄을 땔 일이 없어져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직장 역시 자연스레 문을 닫게 되었다. 좋은 일은 아닐지언정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범주에 속하는 갑작스레 마주하게 되는 사건도 좋지 않게 일어났다. 얼마 남지 않은 공장 가동의 시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에 일하시던 아버지가 부상을 당하셨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한동안 불편한 몸으로 일을 더 하시다가 결국 나중에 가셔서 허리에 실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하셨다.
이 두 가지 범주의 사건은 나를 굉장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내 혼란함과 달리 정작 당사자이신 아버지는 본인 걱정은 뒤로 하고 '앞으로 무얼 할꼬'하셨다. 정년에 일자리가 없어지고 부상까지 당하신 아버지가 아직도 가족을 위해 살아가실 생각을 하니 너무 막막했다.
그러던 중 막막한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우연히 집에서 아버지가 왼팔을 다치셨을 때 사진을 보게 되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지는 그 사진에 대해 어머니께 여쭤보니 아버지가 젊은 시절 벽돌 공장에서 일하시다가 기계에 팔을 다치신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사건 사고들을 겪으며 '어쩌면 이제 내 차례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아버지의 시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편한 팔로 매일같이 석탄 가루가 가득 날리는 곳에서 가족들을 위해 당신을 희생하셨을 아버지의 시간이. 어린 시절 나에게 단순히 야구를 못할 뿐이었던 아버지의 불편하신 팔은 젊은 시절 아픔과 두려움이 담겨 있는 팔이자 그럼에도 가족들을 지탱하는 대들보였다.
마치 본인이 만드시는 연탄과 같은 삶을 살아오신 아버지셨다. 매일 같이 자신을 태움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삶을 사셨다. 검은 연탄이 더 이상 타오를 수 없는 새하얀 재가 될 때까지 빛과 열을 뿜어내듯이 아버지께서는 검은 머리가 하얗게 새도록 자신의 시간을 태워 가족들에게 빛과 열을 주셨다.
그토록 창피했던 연탄 공장 노동자라는 아버지의 직업과 시커먼 연탄이 날 키웠다. 탄가루 날리는 공장 속에서 초라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시간은 세상 그 누구보다 환하게 빛나고 뜨거운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시간을 보며 흐르는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먹먹한 가슴을 뚫었다. 그리고 이제라도 날 위해 살아가신 그 시간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으며, 내게도 아버지 당신을 위해 살아갈 시간이 있음에 또 다시 감사했다.
인생에는 앞서 말한 두 가지 범주의 사건으로 나타나는 역경이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주한 역경이 너무 힘들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으로 보내는 1분 1초는 따갑게 마음을 찌르는 듯하다. 어떻게 견뎌야 할지도 모르겠고 일상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만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이 살아갈 이유를 잊은 것 같은 그 순간에 도달하기까지엔 날 위해 역경을 견뎌낸 누군가의 시간이 녹아있다. 행복하지는 못할망정 차라리 지루했으면 하는 1분 1초를 견디며 날 위해 헌신한 시간이 녹아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의 존재가 그 자체로 의미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우리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태워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분명 그 순간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괴로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오히려 지루했으면 하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존재가 누군가의 삶의 이유였듯이 나에게도 살아갈 이유를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떠한 순간에도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사실은 감동적이다.
누군가의 시간이 녹아있는 우리들의 삶은 그 어떤 순간에도 결코 헛되지 않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태울 수 있는 우리들의 삶도 결코 헛될 일이 없을 것이다. 역경을 극복하는 지루한 클리셰는 꼭 그대로 끝나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