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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May 27. 2019

어느덧 어른이 되어버린 꿈많던 나에게

연금술사_파울로 코엘료

한줄평

꿈을 향해 걷고 있는, 혹은 현실 앞에 안주해버린 모든 어른들을 위한 동화


소감

-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

- 얇은 책이지만 책을 덮고 스스로 채워 나가야 할 할 페이지가 두꺼운 책

-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묵직하게 끝나는 이야기

-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 꿈을 잃어버린 사람, 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

-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면서도 심오한 고대철학 이야기를 듣는 듯 하다

- 한나 아렌트는 '스토리텔링은 그것을 정의하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으면서 의미를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스토리가 가진 힘은 그런 것이다. 여기서 스토리라는 것은 분야로 따지자면 소설이나 에세이이다. 분명한 이론과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지만 진리는 아니다. 어쩌면 진리는 그 반대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한 책.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책은 많다. 다양한 분야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게한 책.


서평

  유치원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선생님들은 학기 초마다 숙제를 내주셨다. 그것은 교실이 바뀌고 친구들이 바뀌고 담임선생님이 바뀌어도 늘 해야하는 과제였다. 바로 인명기록부를 부모님과 상의하여 써오는 것이었다. 갱지로된 그 인명기록부에는 항상 '장래희망', '꿈'을 적는 란이 있었다.

행여 글자가 삐뚫어질까봐 연필로 살살 쓴 다음 펜으로 겹쳐쓰고 잠자리 지우개로 깔끔하게 지워서 완성하곤 했다.

 

  매년 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나의 꿈은 변했다. 유치원때는 우습게도 '장래희망'을 적는 공란에 '허수아비'라고 써서 냈었다. 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생이 된 후로는 주저없이 '고고학자'를 연필로 꾹꾹 눌러썼다. 공룡을 좋아했던 나는 쥬라기공원의 박사가 되고 싶었다. 중학생때에는 멋진 양복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논변하는 '변호사'가 꿈이었고, 고등학생 때는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강단에 서서 젊은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하니 더이상 아무도 나에게 '꿈'이나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라고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꿈', '장래희망'을 기재하는 인명기록부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먼지만 쌓였다. 복잡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함께 술마시고 놀던 대학교 동기들, 선배들이 하나 둘 졸업하여 교정을 떠나 사회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문득 비워놨던 그 공란이 생각났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군대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등병, 일병을 지나 고참이 되자 시간이 남았다.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 말고는 할게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와 같은 꽤나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군대라는 억압된 공간과 상황속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얻게되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접한 것은 이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휘몰아치던 병장때 쯤이었다.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그게 지겨워서 영내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빌려왔었다. 그 제목이 '연금술사'였다.


  '연금술사'는 꿈에 대한 책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지만, 동화라고 하기에는 그 내용이 심오하고 어렵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산티아고라는 젊은 청년이 갈망하던 꿈을 찾아 사막을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유하며, 깨달음을 얻어 성장해나가는 스토리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이정도로만 줄인다.) 이런 메시지를 담고있는 책은 사실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 책이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들은 굉장히 무겁게 내 머리를 때렸다. 책을 읽는 동안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페이지를 넘기는게 너무 불편했다. 결국 그 불편한 상황이 싫어서 중간 쯤 읽다가 책을 덮었다.


  한 7년쯤 시간이 흘러 독서모임을 통해 우연히 이 책을 다시 펼쳤다.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책은 이번에도 무겁게 머리를 때렸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되려 책이 던지는 질문에 하나 하나 대답하면서 책을 읽어나갔고 끝내 완독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30살의 평범한 회사원이다. 지난 모든 삶의 구간들보다 생존을 위해 가장 바쁘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조금씩 키워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의 여정을 통해 작가가 던지는 무거운 질문들이 불편하지 않았다. 난 이제 매년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다이어리에 '꿈'과 '장래희망'을 애매하게나마 적을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연금술사에서 말하는 '자아의 신화'가 나에겐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그 방향성과 이에 대한 확신은 어렴풋하게나마 분명히 존재함을 느낀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연금술사'는 아무 쓸모 없는 납같은 일상적인 금속을 고귀한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다. 수십년을 납을 불덩이에 녹이며 살아가는 연금술사들의 삶을 생각해봤다. 코엘료는 왜 이 책의 제목을 '연금술사'라고 했을까? 어쩌면 일상 속에서 꿈을 향해 수십년을 뜨거운 현실 속에서 버텨내고 이겨내는 우리 모두가 '연금술사'이지 않을까?


나의 화로는 뜨겁게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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