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성, 신영준 <일취월장>, 나심탈레브 <안티프래질>
위기는 무조건 부정적인 것인가?
살다 보면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뒤로 한 걸음만 발을 헛디뎌도 아득한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은 아찔한 상황. 우리는 이런 상황을 '위기'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대부분 위기를 그 자체만으로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특정 단어에서 연상되는 감정이 관점을 왜곡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위기는 그 자체로서는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위기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되려 맥락에 따라 위기는 긍정적인 결과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점에 초점을 맞춰서 오늘의 이야기를 풀어가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기 속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물들이 태동한다!
'위기'라는 진흙탕 속에서 피는 꽃이 '혁신'이다.
위기는 혁신의 어머니
고영성 작가와 신영준 박사의 <일취월장> '4장: 혁신' 편에서는 혁신적이거나 창의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는 많은 사례들의 배경에는 '한계상황'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례들이 제시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재밌는 사례를 일부 각색하여 (msg를 조금 첨가하여) 소개한다.
2014년 파업으로 런던 지하철역 270개 중에 171개가 임시 폐쇄된 일이 있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는 한 번만 더 수업에 지각하여 벌점을 받으면 F학점을 면치 못할 학생이 있었을 수도 있다. 혹은 요 며칠간 지각을 밥먹듯이 한 회사원도 있을 수 있다. 혹시 바로 전날 부장님께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할 것'이라며 협박에 가까운 꾸중을 들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뿐이랴? 일생일대의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피칭을 연습하느라 밤을 꼴딱 새우고 고객을 만나러 가는 영업사원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지하철 파업이 굉장히 크리티컬 한 사건이다. 말 그대로 위기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파업이 끝난 후 세 명의 경제학자들은 시민들의 교통카드 데이터를 중심으로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새로운 길을 찾은 사람들 20명 중에 한 명 꼴로 파업이 끝난 후에도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고 파업 당시 새롭게 발견한 길을 고수하는 모습들이 관측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파업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 이용이 출퇴근, 통학, 이동경로에 있어 가장 적합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상황 (한계상황)에 직면하자 보다 지하철보다 효율적인 이동경로를 찾아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혁신과 창의를 일궈낸 것이다. 혹자에게는 위 내용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사례이기 때문에 '혁신'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혁신'의 사전적 정의가 '묵은 풍속·관습·조직·방법 등을 바꾸어 아주 새롭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충분히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사실 혁신은 그리 멀리 있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위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위기상황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동기를 외적으로 부여하고, 위기라는 한계상황에 봉착할 때 우리의 문제해결 능력이나 전략적 사고가 업그레이드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뉴스에서 한 어린아이가 사고로 트럭에 깔리는 끔찍한 위기상황을 목격하자, 연약한 여성이 홀로 트럭을 들어 올려 아이를 구출했다는 이야기를 접했던 적이 있다. 또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학창 시절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치를 때, "이제 책상 위에 있는 것 전부 다 치우고 손 머리 해!"라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무리 노력해도 외워지지 않던 내용을 그 짧은 찰나의 순간 통째로 완벽하게 암기해버렸던 것이다. 위기에서 비롯된 한계상황은 이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그의 저서 <안티프래질>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어떻게 혁신을 이루어내는가? 먼저 절망적이지는 않더라도 심각하게 어려운 상황에 빠져보라. 나는 필요가 혁신과 발전을 낳는다고 믿는다. 이런 혁신과 발전은 초기 발명 혹은 발명을 위한 시도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서 발생되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나심탈레브, 와이즈베리, <안티프래질> p68
위기: '위'기 속 '기'회
위 내용들을 조합해보면 역으로 혁신을 이끌어내는 방법이 일부러 위기상황을 자초하는 것에 있음을 추론해낼 수 있다.
무슨 미친 소리냐고? 잠깐, 내 말은 억지로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을 조성하라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끝까지 읽어달라.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를 들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정해진 납기(dead-line)보다 3일 정도를 의도적으로 앞당기는 방법' 등으로 일상 속에서 실천 가능한 한계상황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라는 뜻이다. 위기 속에서 발현될 수 있는 본인의 잠재력을 신뢰하라!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곤경은 천재를 일깨운다."라고 말했다. 앨버트 허쉬만은 "탈출구가 막혀있으면 자기 소리를 낸다."라고 말했다. 위기 속에서 기회가 있다는 의미이다.
위기에 대한 2 행시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위: 위기 속에서
기: 기회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