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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Sep 10. 2019

일 잘하는 신입사원은 무엇이 다른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_이혜정(Feat. 문제해결프로세스)

a problem well stated is a problem half solved.
-Charles F. Kettering-


        회사에 입사하여 OJT를 마치고 현업에 막 투입된 신입사원 대부분이 '현타'를 느낀다. 취업난이 심한 요즘 같은 시대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모든 신입사원들은 피 튀기는 취업전선에서 생존한 최정예 전사들이다. 그들의 인명부를 살펴보면 정말 놀랍다. 대부분 학점도 높고, 동아리나 학회에서 장을한 경험은 필수다. 더불어 TOEIC, OPIC 고득점도 모자라 HSK, JLPT 등의 자격증도 섭렵하여 3개 국어 이상을 구사할 줄 아는 학생들도 굉장히 많다. 1년이라도 먼저 취업한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 뛰어난 인재인 그들은 사원증만 메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생아가 될까?


    '학습능력'이 낮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학습능력'은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았을 때,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여 빠르게 적응하는 것. 이를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인출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문제해결 능력'을 말한다. 모든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치게 되어있다.

문제 발견 ⇒ 문제 정의 ⇒ 정보 취득 ⇒ 정보 가공 ⇒ 문제해결 전략 구상 ⇒ 실행


    그렇다면 뛰어난 그들이 '현타'를 맞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위에서 밝힌 프로세스 중 대체 어느 부분에 있는 것일까? 그들은 문제해결 과정의 시작에 해당되는 1~2단계, 다시 말해 '문제 발견', '문제 정의'에 취약한 교육시스템 하에서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줄곧 제시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주어진 문제를 읽고 5지 선다 중 오답인 보기들을 걸러내고 정답을 잘 집어내는 방식으로 평가받아왔다. 수능도 다를 바 없다.


    물론 대학교에 들어오면 큰 변화가 있다. 시험 형식이 객관식이 아닌 장문 서술형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시험 일주일 전쯤이면 교내 게시판은 다음과 같은 게시물들로 도배된다. '김 교수님 경제학 원론 족보 구합니다!'


    결국 대학에서의 성적 차이는 '누가 족보를 더 많이 구했느냐'에서 결정된다. 족보를 구한 친구들 중에서도 모범답안을 암기해서 그대로 잘 베껴서 써내는 친구들에게 A+나 A가 하사된다. 이에 대해서는 서울대 교수학습 개발센터에서 근무했던 이혜정 박사가 쓴 책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 잘 설명되어 있다.



저자의 연구에서 표본집단에 해당되었던 1,100명의 서울대 학생들 중 최우등생 그룹에 속한 46명의  87%는 교수가 강의 시간에 한 말과 의견, 심지어 농담까지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필기한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학생들이 아무리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어도, 그 내용이 교과서에 반하거나 교수의 의견과 다르면 시험지에 자기 의견을 적어서 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이 A+의 훈장을 휩쓸어간다.


    이렇듯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주어진 문제를 잘 해결해내는 수동적 영재를 길러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심지어 문제해결 방식조차도 암기에 의존한다.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방법은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졸업가운을 걸치고 멋지게 학사모를 하늘 위로 던져 올린 후,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뒤 회사에 출근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회사에서는 그 누구도 친절하게 문제를 제시해주지 않는다. 물론 상사들은 그들이 해결해내야 할 것들의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거친 방식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이번 분기 매출을 어떻게든 올리세요!"라는 Rough 한 방향성만 제시해줄 뿐, 해결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친절한 상사는 드물다. 그러니 신입사원들에게 현타가 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동안 배워온 방식에 따르면, 문제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암기했던 방식대로 멋진 해결책을 풀어낼 수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문제를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심지어 암기해야 할 족보도 없다.


    이혜정 박사처럼 정밀한 연구를 진행해서 깨달은 결과물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성과를 내는 뛰어난 신입사원을 곰곰이 살펴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인 문제해결과 문제정의를 잘 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첫 단추가 잘 끼워지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예를 들어 상사가 "이번 분기 매출을 어떻게든 올리세요!"라는 지시를 하면, 그들은 먼저 판매 데이터를 살펴본다. 그다음 판매채널의 실적 데이터를 기간별로 나열한 다음 세부 단위로 쪼갠다. 각 판매채널의 구성비를 살펴본 다음, 튀는 값을 찾아낸다. 그리고 대체 어떤 채널의 어떤 품목에서 매출이 저조한 것인지를 발견해낸다 (문제 발견). 문제가 되는 해당 채널의 매출을 결정하는 원인 변수들을 분석한다. 마케팅 전략, 공급망 사슬, 경쟁사의 동향 등을 살핀 후 문제를 스스로 정의해낸다 (문제정의).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그다음 단계인 전략 수립과 실행으로 이어진다. 분기 마감을 해보면 그들이 창출해 낸 매출실적은 전기대비 100% 이상을 기록한다. 직원 연말평가 기간이 되면 팀장은 신이 나서 여기저기에 그를 칭찬한다. "크~ 우리 영업 1팀 신입사원 알지? 그 녀석 물건이야. 일 정말 잘해~"


    그렇다면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학습능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모든 저자들은 특정 영역의 전문가들이다. 그들이 책을 서술하는 과정들은 위에서 언급한 문제해결 프로세스를 그대로 따라간다. 프롤로그와 서문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들이 어떤 논리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서 문제를 발견해냈는지가 나타난다. 문제가 무엇이며 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밝힌다. 그리고 그 문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해낸다. 그다음 다양한 정보를 취득하고 가공하여 이를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문제를 발견해내고 정의하는 방식을 간접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독서 초보가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모르지만, 다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서문만 보더라도 이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왜 그럴까?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논리적인 과정만 보더라도 그 책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제발견, 문제정의는 중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판별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자신의 업무에서도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역량 자체가 높아진다. 그러니 독서를 제대로 많이 한 사람은 일을 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도 적었듯이, 잘 명명된 문제는 이미 반쯤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을 잘 해내고 싶은가?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기본기를 탄탄히 하자. 이 기본기를 쌓을 수 있는 교과서는 이미 당신의 먼지 쌓인 책장에 널려있다. 결국 당신의 인사고과 점수와 승진의 핵심은 독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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