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_다치바나 다케시
어떤 책이든 그 책을 산 이유는 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인 일본의 대표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가 한 말이다. 책을 통한 독학으로 지식의 거장으로서 우뚝 선 그는 '고양이 빌딩'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개인 서재로 유명하다.
도쿄 시내에 위치한 이 괴상하게 생긴 빌딩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책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자 책을 보관하고 저술활동을 하기 위해 지은 빌딩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의 높이가 700m나 되는 이 빌딩 내부에는 침대와 탁자를 제외하고 전부 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이 빌딩 안에만 개인 소유의 책이 5만 권이나 된다고 하니 놀랍다. 심지어 이 건물 만으로는 모자라서 몇 년 전부터는 다른 건물을 임대하여 제2의 서고를 보유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일본 NHK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얼핏 본 기억이 나는데, 책을 3층까지 옮기는 것이 힘들어서 아예 크레인을 동원해서 책을 서재로 옮기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그의 서재 내부 사진을 보면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그가 저술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라는 책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책 쇼핑 중독자
나는 쇼핑 중독자다. 내게 있어 서점에서 책 쇼핑을 하는 것은 취미를 넘어서 거의 집착에 가까운 병 수준이다. 회사에서 우리 팀에도 책 쇼핑 중독자인 과장님이 한 분 계신다. 나를 독서의 늪으로 빠뜨리신 장본인이신데, 어느 정도냐면 집의 서재가 가득 차서 심지어 차량 트렁크에도 책을 싣고 다니신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무실 책상에 탑처럼 쌓인 책들이 파티션 보다 높다. 올해 초에는 아예 사무실 책상 뒷켠 벽에 책장을 짜 맞추셨다. 과장님과 나는 모두 책 쇼핑 중독자이면서, 서로의 책장에 새롭게 쌓이는 책들의 주범이기도 하다. 서로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추천도 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 쇼핑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과장님이 있어서 회사생활이 조금은 더 즐거워진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살펴보다 보면 충동적으로 책을 몇 권씩이나 사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강제로라도 서점을 빨리 떠날 수 있게 환경설정을 했다. 약속 장소를 서점 근처로 잡고 약속 시간보다 30분 전에 서점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러면 딱 30분만 서점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할 수 없으니 1~2권 정도만 사는 것으로 그친다.
그렇게 책을 사들고 집에 들어갈 때면 늘 부모님 눈치를 본다. 다 읽지도 않은 책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자꾸 좁은 방에 책을 사들이냐는 잔소리가 두렵기 때문이다. 이 글은 부모님께 바치는 항변의 고이다.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누울 자리도 없을 만큼 책으로 방을 가득 채우기 위한 반항의 선언문이다. (물론 부모님은 나의 브런치를 구독하시지는 않는다)
항고의 변
(1) 죄책감은 지속적인 독서생활의 연료이다!
다치바나 다케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나는 먼저 거금을 들고 서점가로 나간다. (중략) 사고 싶은 책을 앞에 두고 망설이지 않도록 지갑은 필요 이상으로 두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책은 한꺼번에 구입해 놓는 것이 좋다. 독학으로 공부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마음먹은 의지를 지속시키는 일인데, 이를 위해서는 미리 만만찮은 비용을 지불해 버리는 것이 낫다. 대개 사람들은 돈을 아까워하므로 먼저 돈을 지불하고 나면 원금만이라도 되돌려 받고 싶어 공부를 계속하게 된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p64
그렇다. 자꾸 다 읽지도 않은 책이 많으면서 새 책을 사제끼는 이유는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기 위해서다. 어찌 됐건 일단 사놓으면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언젠가는 그 책을 읽게 된다. 읽지도 않아놓고 책장에 꽂힌 책을 바라볼 때면 죄책감이 든다. 그러다 보면 차라리 그냥 시원하게 읽어버리자는 마음이 들게 된다. 물론 다 읽기도 전에 또 다른 책이 자리 잡게 되므로 이 죄책감은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 족쇄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지속해서 독서할 수 있는 것이다. 자, 불변의 진리를 정리해보겠다. 돈을 써서 책을 살 것. 그리고 잘 보이는 자리에 떡 하니 올려놓을 것. 계속 죄책감을 느낄 것. 멈추지 않고 읽어나갈 것.
(2) 책은 소비가 아닌 예비적 저축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위에서 언급한 같은 책에서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이라는 제목으로 일과 일반교양을 위한 독서법 14가지를 소개하는데 그중 첫 번째는 아래와 같다. (심지어 첫 번째로 기술되어 있는 항목이다.)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값은 싼 편이다. 책 한 권에 들어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p81
지금 내가 이 책을 사지 않으면 언젠가는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서 그 정보를 취득하게 될 것이다. 기껏해야 책값은 2만 원 정도이지 않은가? (커피 4잔 값이다.) 내가 살면서 스티브 잡스, 팀 쿡, 제프 베조스, 나심 탈레브, 칩 히스, 댄 히스를 만나볼 수나 있겠는가! 워렌 버펫과의 점심식사는 40억이 넘는 가격에 낙찰된다는데, 그가 쓴 책을 읽으면 고작 2만 원의 가격으로 40억 원을 버는 셈이다. 이보다 합리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따라서 책을 사는 행위는 소비가 아니라 예비적 저축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알라딘 중고서점'이나 '온라인 중고서점'을 활용하면 깨끗한 책을 반 값에 구매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작년부터는 문화소득공제도 생겼다. 국가도 내게 책을 사서 읽으라고 권장하는데, 참된 시민으로서 어찌 이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3) 반서재=제대로 공부하고 있다는 반증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에서는 20세기 인문학의 거인 움베르토 에코의 서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박학다식하고 제기 발랄하면서 통찰력을 갖춘 몇 안 되는 학자의 반열에 든다. 3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큰 서재를 가진 그에게 방문자들 중 일부는 이렇게 묻는다. "와, 시뇨레 에코 박사님! 정말 대단한 서재군요. 그런데 이 중에서 몇 권이나 읽으셨나요?"...(중략)...맞다. 이미 읽은 책은 아직 읽지 않은 책 보다 한참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다...(중략)...서재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과 관련된 책을 채워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 지식이 쌓이고 읽은 책도 높이 쌓이지만, 서가의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점점 늘어나 겁을 먹게 한다. 진정 알면 알 수록 읽지 않은 책이 줄줄이 늘어나는 법이다. 읽지 않은 책이 늘어선 대열. 이것을 반서재라 부르기로 하자.
<블랙스완> 나심 탈레브 p42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쌓여간다는 것은 현재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메타인지가 높아졌다는 것은 곧 지적 호기심이 증폭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이렇게 많은 책들을 샀겠는가?! 이는 곧 학습에 대한 의지가 높아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결국 책장이 읽지 않은 책으로 가득 찬다는 것은 지금 내가 제대로 공부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니 어머니! 앞으로 저는 당당하게 책 꾸러미를 들고 현관을 열겠습니다. 책 선반이 가득 차서 방바닥을 책으로 탑을 쌓아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