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시장을 성숙하게 하는 플랫폼의 힘 (feat. Data의 힘)
[도서시장의 변화]
돌이켜보면 근 몇 년 사이에 도서출판 시장에는 커다란 변화들이 있었다. 우선, 책을 쓰는 저자의 자격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예전에는 저명한 작가들이나 유명인들, 각 분야의 전문가, 교수 등 엘리트 지식인 층에게만 제한되어 있던 작가라는 자격이 최근 들어 일반인들에게도 활짝 열렸다. 그리고 온라인 유통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와중에 치열한 경쟁을 거쳐, 낮은 단가와 넓은 취급범위를 갖춘 대형 온라인 출판사가 시장을 잠식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프라인 서점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개인 사업자로 운영되던 중소형 서점들은 문을 닫는 일이 빈번해졌다. 안 그래도 좁았던 시장을 온라인 시장과 대형 오프라인 서점에게 빼앗긴 결과다. 더불어 SNS, Youtube, Instagram 등 Marketing Cost가 낮으면서도 파급력이 굉장히 강한 신규 route가 다변화되면서 마케팅 영향력이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Good Things, Bad Things]
정리하자면 온라인 시장의 성장과 공급자의 진입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책들이 홍수러럼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가, 소리 소문없이 썰물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처럼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편의성과 고객 경험은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있었다. 정보의 양이 많아진 만큼 정보의 질이 같은 규모로 함께 성장하진 못했다. 그리고 양질의 상품을 선별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안목 또한 같은 속도로 함께 높아지지는 못했다.
출간되는 책의 전체 증가수보다 중요한 것은 양질의 정보가 밀도있게 담긴 좋은 책들의 공급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좋은 책을 구별해낼 수 있는 소비자들의 판단기준, 양서를 골라내는 안목 자체가 높아져야 한다.
결국 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 중장기적으로는 좋은 양질의 정보들의 공급량 자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요자의 수준이 시장의 공급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시장이 성숙해지면 소비자들은 Marketing 그 자체 만으로는 현혹되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들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성장하는 시장을 우리는 '성숙하다'라고 말한다.
[Amazon Book store 맨해튼 지점을 가다]
최근 도서출판 시장의 폭풍같은 변화 속에서도 입지를 굳힘과 동시에 전체시장 자체를 성숙하게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Amazon이다. 지난달 나는 뉴욕 여행을 다녀왔는데, 맨해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건너편에 위치한 Amazon Book store에서 느낀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Amazon을 온라인 유통채널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Amazon book store는 거대 유통기업 Amazon이 2015년부터 운영하는 오프라인 서점이다. Amazon Books는 온라인 서점에서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시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Amazon이 오프라인 매장을 낸다고 발표했던 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의사결정이었다. 일각에서는 시장 트렌드를 역행하는 것이라며 맹렬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반면 다른 측면에서는 Amazon의 의사결정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그들의 행보를 기대하며 지켜보던 시각도 있었다.
Amazon Book store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뜻 보기에 다른 서점과의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외관의 모습들은 그저 평범한 서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냥 Amazon이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인가 보다."라고 속단하고 책을 살펴보기 위해 선반에 가까이 다가서자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선반에 거치된 POP를 유심히 살펴본 뒤, 나는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 역시 Amazon이구나...!"
[Data가 다했네...]
Amazon Books의 핵심 역량은 단순히 잘 짜인 유통망 구조, 물류배송 시스템, 취급 도서 SKU의 수 등 형식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Amazon Books의 역량을 증명하는 수많은 기업가치 요소 중 절반 이상은 20년간 쌓아온 수많은 Data에 있다. 그들이 온라인 채널에서 쌓아온 수많은 고객 Data는 원석이다. 그리고 이를 잘 가공해내기만 하면 엄청나게 큰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다. 고객들의 구매이력을 통해 거주지, 나이, 성별, 구매빈도 등을 파악하면 고객 성향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Data가 쌓이고 쌓이면 엄청난 자산이 되는 것이다.
Amazon Book store에서는 온라인 채널에서 수집된 고객 Data와 해당 책에 대한 서평, 평점, 선주문량, 판매량, 재고 등의 Data를 결합하여 좋은 책을 고객들에게 큐레이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책 선반에 거치되어있는 POP를 통해 위 정보들을 잘 요약해서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책에 대해 실제 구매자들이 평가한 평점뿐만 아니라 온라인 채널에 등재된 리뷰 수까지 기록되어 있다. 더욱 리마커블 한 것은 실제 구매자들이 남긴 서평들 중 핵심적인 문장들을 짧게 요약해서 작은 면적의 POP에 기재해놓은 점이다. 소비자들은 이 책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남기고 있으며, 특히 어떤 점에서 이 책을 좋은 책으로 평가했는지에 대한 타인의 의견을 염탐할 수 있다. 그리고 평점은 어느 정도이며 데이터의 표본크기 자체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확인함으로써 리뷰의 신빙성을 가늠할 수 있다. 바로 이게 Amazon Book store만의 차별화된 Point다.
이 뿐만이 아니다. Amazon Book store는 Amazon이 운영하는 오디오북 서비스 Audible과 전자책 단말기 Kindle에서 수집한 data도 활용하여 오프라인 서점에 적용한다. 예를 들어 Kindle에서 수집한 data는 해당 책을 구매한 사람들이 며칠에 걸쳐 이 책을 완독 했는지, 어디까지 읽었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이를 바탕으로 오프라인 매장에는 'Page Turners Books Kindle readers finish in 3 days or less'라는 코너를 운영한다. 바로 Kindle 이용고객 data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3일 안에 한 책을 완독 해버린 책들을 모아놓은 코너이다. 3일 만에 책을 완독 했다는 것은 그 책의 가독성이 높으며 재미있는 책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Amazon Books의 Win-Win-Win]
뉴욕에 위치한 Amazon Book store를 경험하고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Amazon Book store는 신개념 O2O 리테일 혁신이다. O2O라는 것은 원래 Off-line To On-line이라는 뜻으로,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기존 오프라인 채널들이 온라인으로 사업 채널을 옮기는 현상을 뜻한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Amazon의 행보는 이와 정반대였다. On-line 채널에서 획득한 Data를 바탕으로 Off-line 채널로 확장하면서 본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차별화된 사소한 전략으로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다른 오프라인 채널들이 걱정하는 '쇼루밍 현상' (고객들이 오프라인 시장에서 제품을 시험해보고 정작 온라인 채널을 통해 구매를 하는 현상)을 오히려 권장하는 것이다.
둘째, Amazon Book store는 도서출판 시장을 성숙하게 만들어나가고 있다. 본 글의 서두에서는 시장이 급속하게 변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제품의 질을 판별하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졌음을 지적했다. 시장은 급격히 커졌는데 소비자들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지지 않으면 좋지 않은 제품을 좋은 제품으로 착각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대중의 힘이 모이면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그 누구보다 똑똑하다. 대중의 견해가 모이면 개개인보다 더욱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의 모든 역사는 개인이 아닌 집결된 대중의 힘으로 발전해왔다. 그렇게 수많은 의견들이 모이고 축적되면 통계적 정확성은 수리적 정확성에 수렴할 만큼 높아지고, 진실과의 오차범위는 줄어들게 되어있다.
Amazon Book store는 이런 측면에서 시장을 성숙하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수많은 독자들이 남긴 Data를 바탕으로 어떤 책이 좋은 책이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소비자들의 목소리로만 전달하고 있다. 대중이 큐레이팅 하는 좋은 도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책들을 추천받아 지적 수준이 높아진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하는 선순환의 고리이다. 결국 사람을 모으고 네트워킹을 다변화시키는 것이 플랫폼의 역량이다. Amazon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강력한 플랫폼이다.
바로 이것이 고객도, 기업도, 사회도 성숙하게 만드는 Win-Win-Win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참고_Amazon Bookstore의 선반을 자리 잡고 있는 명저들
# 참고_새롭게 알게 된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