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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Sep 15. 2019

'진정한 독서' vs '최소한의 독서'

장정일의 공부론을 바탕으로 살펴본 독서의 목적

[장정일의 공부론]

"공부만 하고 자기 입장이 없으면 그것은 그냥 사전 덩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또 공부는 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 입장만 가지게 되면 남과 소통할 수 없는 고집불통이나 도그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공부해서 자기 입장을 만들고, 또 자기 입장을 깨기 위해 또 공부하고, 이런 것이 공부이고 그게 책 읽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 2007년 1월 8일 방영, KBS 1TV <TV 책을 말하다>, '세상의 무지에 맞서라-장정일의 공부' 중 -


    책을 읽는 목적과 독서를 하는 태도에 대해 이보다 더 좋은 설명이 있을까? 독서를 하는 이유는 이처럼 자신의 세계관을 정립하고 그 경계를 계속 허물어 나가면서 넓혀 나가는 것에 있다. 독서도 공부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집합이라는 전제 하에 장정일의 공부에 대한 견해는 곧 독서에 대한 견해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하의 내용에서는 논의의 맥락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라는 단어를 '독서'로 대체하여 언급하겠다.


[최소한의 독서 vs 진정한 독서]

    장정일은 독서만 하고 자기 입장이 없는 상태를 '사전 덩어리'라고 표현했다. 단순히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이니라'라는 식으로 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은 '진정한 독서'가 아니다. 또한 단순히 읽고, 암기하는 과정을 거쳐 머릿속에 정보를 축적하는 행위 역시 '진정한 독서'가 아니다. 이를 '진정한 독서'라는 개념과 구별하기 위해 '최소한의 독서'라고 명명하겠다. 물론 '진정한 독서'는 당연히 텍스트를 읽어내고 정보를 구분하고 조합하는 '최소한의 독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논지의 핵심은 앞서 명명한 '최소한의 독서', 여기서 멈춘다면 그저 우리는 '사전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에 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최소한의 독서'를 넘어서 '진정한 독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독서'와 '최소한의 독서'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입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

    이에 대해 장정일은 독서는 자신의 '입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이 앞서 내가 명명한 '진정한 독서'의 개념인 것이다. '진정한 독서'는 단순 정보 수집에 해당되는 '최소한의 독서'를 넘어서, 독서의 결과물인 자신만의 '가치관'과 '세계관', 다시말해 '입장'을 만드는 행위이다. '최소한의 독서'는 저자에서 독자로 향하는 일방향적 주입식 소통이며, 수동적인 학습이다. 반면 '진정한 독서'는 저자에서 독자로, 독자에서 저자로 향하는 쌍방향적 소통이다. 저자와 독자 두 주체간의 사유가 부딪히고 대립하고, 합쳐지고 확장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 생각은 나와 다른데?", "아! 내가 기존에 알던 내용을 이런 방식으로도 설명할 수 있구나?"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 과정을 거쳐서 책을 덮을 때면 어떤 입장이 생겨난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독서'는 저자와 독자간의 지적인 전쟁과 평화상태의 반복이다.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저자와 독자 간의 긴장상태를 형성하면 독자 자신의 '입장'이 자리매김한다. 이것이 바로 적극적인 학습으로서 '진정한 독서'다. 따라서 '진정한 독서'를 했다면, 책을 읽기 전과 읽고난 후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 즉, 자신의 기존 입장이 더 강화되거나 혹은 기존 입장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입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입장을 깨뜨리고 확장하는 것]


    장정일은 입장을 만들고, 또 자기 입장을 깨기 위해 독서하는 것이 책읽는 사람의 도리라고 말했다. 독서를 하는 목적이 '입장'을 구축하는 것이라면, 왜 굳이 힘들게 만들어낸 '입장'을 깨기 위해 또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본질적으로 항상 완성된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는 입장은 없기 때문이다. 독서를 해나가면서 기존에 구축했던 '입장'이 애초에 틀렸던 것임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 당시엔 맞는 것이었더라도 나를 구성하는 경험들과 외부환경이 변하면서 맞았던 것이 틀린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입장'을 깨고 다시 만드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경계를 허물고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손에서 책을 놓아서는 안된다. 끊임 없이 공부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독서'를 하는 사람의 도리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카프카는 오스카 폴락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치는 일격으로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는가? 무릇 책이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위한 도끼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믿음이다."


[잘 읽고 있는것인가?]

    책을 읽다보면 "지금 내가 잘 읽고 있는게 맞나?" 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앞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질문을 바꿔서 이야기해보자. "이 책을 통해서 내 입장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이 책을 통해서 기존의 내 입장은 강화되었는가, 해체되었는가?" 어떤 질문이든 "그렇다"라는 답변을 할 수 있으면 '진정한 독서'를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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