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fovator Sep 25. 2019

일단 많이 읽고 볼 일입니다.

'다독 콤플렉스'를 가져라!

[다독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각에서는 독서에 있어 '다독'은 실상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이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다독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저는 책 읽기에 있어 ‘다독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독 콤플렉스'를 가지면 쉽게 빨리 읽히는 얇은 책들만 읽게 되니까요. 올해 몇 권 읽었느냐,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일 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줄 친 부분이라는 것은 말씀드렸던, 제게 ‘울림’을 준 문장입니다. 그 울림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보고 잊히는 것과 ‘몸은 길을 안다’ 이 구절 하나 건져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 <책은 도끼다>, 박웅현, 북하우스, p.34 -

요약하자면, '읽은 책의 수'보다 '울림을 주는 문장에 그은 밑줄의 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독 콤플렉스를 가져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의견에 반만 동의한다.


    일단 많이 읽지 않으면 울림을 주는 문장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무조건 낚싯대를 많이 던져놔야 물고기를 한 마리라도 더 잡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많이 읽을수록 울림을 주는 문장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 경험적으로 일 년에 다섯 권만 읽어서는 정말 내 삶에 울림을 주는 문장을 발견할 확률이 매우 낮다. 많이 읽지 않으면서 울림을 주는 문장을 많이 찾아내려는 것은 욕심이자 도둑놈 심보다.

    또한 일단 양이 쌓여야 질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같은 책이라도 과거에 읽었을 때와, 지금 다시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예전에는 울림을 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하여 밑줄을 긋고 별표까지 쳐놨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대체 나는 왜 이런 부분에 밑줄까지 그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과거와 현재 두 시점의 공백기 동안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서 배경지식이 전보다 확장된 경우를 전제로 한다. 다독을 통해 배경지식이 축적되면 독자로서의 지적 수준과 안목 자체가 높아진다. 따라서 현재 나에게 울림을 준 그 문장이 정말로 밑줄을 그을 만큼 가치가 있는 문장인지는 많이 읽어야만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무조건 '다독 콤플렉스'를 가져야 한다.


[수평적 다독, 수직적 다독]


    그렇다면 다독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크게 '수평적 다독'과 '수직적 다독', 이렇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수평적 다독'의 개념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독파하는 것이다. 카테고리와 분야를 넘나들며 기본적인 교양을 쌓아 나가는 독서다. 비유컨대, 지식의 지평을 확장해나가는 땅따먹기 같은 독서다. 반면, '수직적 다독'은 특정한 소수 전문분야에 집중하여 파고드는 다독이다. 비유하자면 황금맥을 찾고나서 드릴로 집요하게 끝까지 깊게 파고드는 독서다. 넓게 보면 '계독'과 유사한 개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독서의 '양 자체가 압도적으로 많아야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한 방울씩 떨어뜨려서는 수 천년, 수 만년이 걸릴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아니라 수도꼭지를 끝까지 올려서 콸콸콸 쏟아내야만 바위를 뚫을까 말까 한다. 무엇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수평적'이건 '수직적'이건 공통적으로 '다독'은 필수라는 점이다.


[독서 초보자, 중급자, 고급자의 단계별 다독법]


    독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 '독서 초보자 단계'라면 일단 '수평적 다독'부터 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수평적 다독'을 하다 보면, 집중적으로 독파해야 하는 세부적인 특정 분야가 눈에 보인다. 당장 각자가 처한 현실세계에서 도움이 될만한 카테고리나 주제가 보이게 된다. 각자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정말 중요한 영역, 실력이 부족한 영역이 가시권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독서 중급자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 해야 할 것은 '수직적 다독'이다. '수직적 다독'이란 앞서 말했듯 특정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다독이다. '수직적 다독'을 꾸준히, 집중적으로 하면 준전문가 수준까지 충분히 다다를 수 있다.


    '수평적 다독'만 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그런 수준에 그친다. 넓고 얕은 지식은 내 삶에 무기가 될 수 없다. 어떤 무사가 칼을 몇 자루 씩이나 가지고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의 칼이 전부 뭉툭한 날이라면 진검 승부에서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누구에게? 비록 한 자루의 칼이라도 날카롭게 벼려진 명검을 지닌 검객에게 말이다. '수평적 다독'을 하면 뭉툭한 날의 칼을 많이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수직적 다독'을 하면 칼날에 머리카락을 올려놓고 입김만 불어도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나갈 수 있는 명검 한 자루를 만들 수 있다. 물론 둘 다 중요하다. 하지만 초급자 단계를 넘어서 중급자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한 놈만 패는 독서, '수직적 다독'을 통해 전문가로 우뚝 서야 한다.


    '수직적 다독'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마지막 단계인 독서 고급자 단계로 진입할 준비가 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다시 '수평적 다독'으로 회귀해야 한다. 한 분야에만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시야가 좁아지고, 편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직적 다독'은 '수평적 다독'을 통해 완성된다.


    사실 수직적으로 전문성을 가지면서 수평적으로 교양이 넓은 사람들이 보다 훨씬 높은 퍼포먼스를 낸다는 것은 이미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는 1901년부터 2005년까지의 노벨 수상 과학자들의 집단 특성을 동시대 다른 과학자들과 비교한 재미있는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노벨상을 탄 과학자들이 그렇지 못한 부류의 과학자 집단보다 '음악, 미술, 공예, 글쓰기, 공연' 등 비과학 분야인 예술분야에 취미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적게는 2배, 많게는 22배나 높았던 것이다. (참고:  <오리지널스>, 애덤그랜트, 한국경제신문, p93 )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전문분야에서의 퍼포먼스는 특정 수준을 넘어서면 기타 분야의 다양성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수직적 다독'을 통해 쌓아 올린 전문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힘은 역설적으로 '수평적 다독'을 통해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수평적 다독'은 전문 영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발전, 심화시킬 수 있는 창의성의 원동력이 된다.


[많이 읽는 만큼 높이 올라간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모두 '다독 콤플렉스'를 가져야 한다. 다독은 크게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수평적 다독'과 전문 분야를 파고드는 '수직적 다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독서 초보자' 단계에서는 '수평적 다독'을 통해 교양을 넓혀야 한다. '독서 중급자' 단계에서는 '수직적 다독'을 통해 준전문가 수준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한편 '독서 고급자' 단계에서는 다시 '수평적 다독'으로 회귀하여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지적 탐구를 행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은 일단 많이 읽는 것, '다독'에 있다. 그러니 일단 많이 읽고 볼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의 빌드오더, 테크트리는 존재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