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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Apr 18. 2020

배우 하정우가 '걷기'에 집착하는 이유

서평_<걷는 사람, 하정우>, <움직임의 힘>

[하정우의 공약: 국토대장정]


2011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후보자였던 배우 하정우는 시상식에서 다음과 같이 대국민 공약을 걸었다.



"제가 상을 받게 된다면, 그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 길에 오르겠습니다!"


결과는?

"2011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황해> 하정우!"


그렇게 그는 얼마 후 등산화를 꿰어 신고 서울에서 해남까지 두 발로 꾹꾹 눌러 담는 국토대장정을 나섰다. 참고로 서울에서 해남까지는 577km다.



그렇다. 사실 하정우는 그야말로 걷기 중독자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의 사람들의 평균 일별 보행수는 5 천보 미만이다. 이에 반해 하정우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3만보씩을 걷는다고 한다. 이 정도면 마니아를 넘어서 중독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이다. 그는 하루에 3만보씩 걷는 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발 디딜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걸어서 이동하기. 그러니까 차는 물론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등은 가급적 타지 않는다. 걸음수를 일상에서 알뜰살뜰 모아야 한다. 이동할 때 지키는 이 작은 원칙이 내가 하루에 3만 보를 걷는 결정적인 비결이다.

- 걷는 사람 하정우 中, 하정우 저, 문학동네 -


심지어 그는 '걷기'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에세이 형식으로 기록한 책 <걷는 사람, 하정우>를 써내기도 했다.




[걷는 사람, 하정우의 걷기 사랑]


'걷기'가 얼마나 좋았으면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책까지 써냈을까? '걷기'에 대한 그의 사랑과 예찬은 책의 페이지마다 곳곳에 도배되어있다.


나는 걸음수를 측정하는 피트니스 밴드 '핏빗(fitbit)'을 손목에 차고, 시간이 가듯 나의 걸음이 마일리지로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내 인생 최고의 흥미진진한 게임으로 여기며 걷는다. 걷기 모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오늘은 얼마나 걸었나 서로 내기하고 응원하며 계속 걷는다. 내가 사는 도시를 내 발로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동네에 연결된 작은 골목길을 알아가는 게 나는 즐겁다.

- 걷는 사람 하정우 中, 하정우 저, 문학동네 -
나는 걸을 때 발바닥에서부터 허벅지까지 전해지는 단단한 땅의 질감을 좋아한다. 내가 외부의 힘에 의해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리듯 쿵쿵 딛고 걸어가는 게 좋다.

- 걷는 사람 하정우 中, 하정우 저, 문학동네 -
걷기에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태엽을 감아주는 효과가 있어, 우리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더 버티고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 걷는 사람 하정우 中, 하정우 저, 문학동네 -


놀라운 것은 '걷기'라는 소재 하나로 300 페이지의 책 한 권이 나올 정도의 에피소드가 나온다는 점이었다. 여간 좋아해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분량이다. 책의 전체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정우가 스스로에게 '만약 인생의 마지막 4박 6일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던진 질문에 답한 내용이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겠지만, 그의 답변은 역시나 '걷기'였다.



만약 내 인생에 ‘마지막 4박 6일’이 주어진다면, 난 진심으로 뭘 하고 싶은가? 결론은 걷기였다. 나는 몸을 움직여 계속 걷고 싶었다.

- 걷는 사람 하정우 中, 하정우 저, 문학동네 -


아니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걷기에 집착한다는 말인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걷겠다는 그의 말은 결코 가식이 아닌 진심인 것 같아서 더욱 의아했다. 대체 무엇이 그를 걷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그의 책 <걷는 사람, 하정우>에도 충분히 설명되어 있으나, 나처럼 운동을 원체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이 없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는 법. 실제로 내가 운동화 끈을 조여 메고 트랙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보다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했다. 그래야만 설득될 것 같았다. 


[움직임의 힘]



이러한 갈증을 깔끔하게 해소시켜주는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켈리 맥고니걸 박사의 <움직임의 힘>이다. 

켈리 맥고니걸은 건강 심리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 강사이다. 이 책에서는 운동이 신경학적으로, 해부학적으로 우리의 신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운동을 통해서 얻게 되는 심리학적, 정신의학적, 사회학적 이점에 대해서 최신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설명되어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명저이다.


[운동을 하면 행복해진다고?]


이 책에서는 실제로 운동이라는 행위가 우리 삶의 행복지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다음의 연구결과에 기대어 설명한다.


미국의 경우, 가속도계로 측정한 일일 신체 활동은 삶의 목적의식과 상관관계가 있다. 실시간 추적 조사에서도 사람들은 활발하게 활동할 때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평소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한 날 자기 삶에 더 만족해했다.

- 움직임의 힘, 켈리 맥고니걸 저, Andromedian, p29 -


또 다른 연구결과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하정우처럼 운동을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운동을 강제로 하지 못하게 하자, 행복감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서 우울증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진행된 다른 실험에서, 꽤 활동적인 성인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 몸을 많이 움직이지 못하게 했더니 행복감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을 두 주 동안 주로 앉아서 지내게 하자 불안해하고 짜증도 많이 부렸다. 성인에게 임의로 일일 보행 수를 줄이게 하자 88퍼센트가 더 우울해했다. 활동을 더 줄이게 하자 일주일도 안 돼 삶의 만족도가 31퍼센트나 감소했다. 하루 평균 5,649보만 걸으면 불안과 우울증이 생기고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미국인은 하루 평균 4,774보를 걷는다. 전 세계 성인의 평균 보행 수는 4,961보다.

- 움직임의 힘, 켈리 맥고니걸 저, Andromedian, p30 -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운동은 우리의 삶의 목적의식을 보다 명확하게 느끼게끔 해준다. 움직일수록 삶이 행복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이 연구의 시사점은 결국 우리의 뇌가 활발한 신체활동을 할 때에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 이 말인즉슨, 운동을 하면 우리의 몸속에서는 생리학적으로 분명 이와 연관된 특정 호르몬이 방출되며, 그로 인해 심리학적인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운동이 선물하는 합법적 마약, 엔도카나비노이드]


운동을 할 때 방출되는 긍정적인 호르몬은 굉장히 많지만, 우리가 행복감을 느끼게끔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호르몬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엔도카나비노이드를 두고 "근심을 없애고 행복을 선사하는" 화학물질이라고 말한다. 이는 운동의 짜릿함, 즉 엑서사이즈 하이가 당신의 뇌에 행하는 일에 관한 첫 번째 단서를 제공한다. 편도체와 전액골 피질 등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뇌 부위에는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용체가 풍부하다. 이 수용체에 엔도카나비노이드 분자가 걸려들면, 불안감이 줄어들고 만족한 상태가 형성된다. 또 엔도카나비노이드는 뇌의 보상체계에서 도파민을 증가시켜 낙관적 감정을 부추긴다.

- 움직임의 힘, 켈리 맥고니걸 저, Andromedian, p41 -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운동을 할 때 방출되는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화학물질의 효능은 마약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운동중독'이라는 표현이 과학적으로 정확히 들어맞는 표현인 것이다. 흔히 하정우와 같은 운동 중독자들은 운동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분이 고양되고, 카타르시스에 버금가는 희열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하는 간증을 하곤 한다. '러너스 하이'라는 개념으로 잘 알려진 이러한 운동의 효과는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호르몬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엔도카나비노이드 (endocannabinoids)는 대마초(마리화나)에 의해 모방되는 화학물질로, 통증을 가라앉히고 기분을 고양시켜준다. (...) 게다가 대마초의 여러 효능은 운동으로 유발되는 쾌감과 일치한다. 가령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고, 통증이 가라앉고, 시간이 느리게 가고, 감각이 고조된다.

- 움직임의 힘, 켈리 맥고니걸 저, Andromedian, p33 -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


그렇다면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해야 '엔도카나비노이드'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마약과도 같은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애리조나 대학의 데이비드 라이클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간 강도의 가벼운 러닝이나 조깅을 20~30분 이상 꾸준히 할 때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라이클렌은 규칙적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트레드밀에서 달리게 했다. 달리는 강도는 저마다 다르게 하고, 달리기 전과 후에 피를 뽑아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를 측정했다. 30분 동안 천천히 달린 경우 아무 변화가 없었다. 진이 빠질 정도로 격렬하게 달린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깅, 즉 가벼운 러닝을 한 경우에는 러너의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가 세 배나 높아졌다. 

- 움직임의 힘, 켈리 맥고니걸 저, Andromedian, p33 -


일단 달리기 자체가 아니라 중간 강도로 꾸준히 하는 신체 활동이 러너스 하이의 핵심 열쇠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자전거 타기, 경사진 트레드밀에서 걷기, 등산을 통해서도 엔도카나비노이드가 비슷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짜릿한 기분을 맛보고 싶으면, 그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되는 것이다.

- 움직임의 힘, 켈리 맥고니걸 저, Andromedian, p35 -



따라서 삶을 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운동을 통해 '엔도카나비노이드'를 꾸준히 방출시켜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달리 운동이 격렬할 필요는 없다. 그저 적당히 힘든 일을 꾸준히 하는 것, 끈질긴 노력이 보다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운동을 하고 싶은데 막막한가?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가? 운동의 목적이 무엇이건 일단 먼저 재미를 붙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운동이 가져다주는 황홀한 행복감, 일명 '러너스 하이'를 먼저 경험해보아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가벼운 달리기, 조깅, 자전거 타기, 경사진 트레드밀 걷기, 등산을 20분 이상 하는 것을 추천한다. 배우 하정우가 그토록 '걷기'에 집착하는 비밀이 여기에 숨어있다.


당신을 계속 움직이게 해서 심박동수를 증가시키는 것은 뭐든 자연의 보상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하다. 달성해야 할 성과의 객관적 척도도 없고, 도달해야 할 걸음 수나 거리도 없다. 운동으로 유발되는 행복감을 경험할지 말지 결정하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적당히 힘든 일을 20분 이상 꾸준히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의 짜릿함이 아니라 끈질긴 노력 끝에 맛보는 짜릿함이다.

- 움직임의 힘, 켈리 맥고니걸 저, Andromedian, p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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