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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Oct 05. 2023

매듭을 짓다

엉킨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매듭은 풀어야 한다는 강박에, 그래야 마음의 앙금으로 남아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갑작스레 토해야 하는 나의 잠재의식 속 추한 욕망들이 드러나 있는 것 같아 지난 열흘이 온통 회색이었다. 


Untangle 연필그림은, 풀어야 하는 매듭의 실마리를 여럿 내보이며 밖으로 밖으로 손을 내밀어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그림 작가님의 평가 또한 자유롭게 뻗어 나가는 그 고민의 실마리 한가닥을 당기며 시작하라 하셨다. 한 가닥을 잡아당기면 풀리는 걸까. 다시 더 엉키는 매듭이 생기는 건 아닐까. 푸는 게 아니고 짓는 건가. 


나는 결단을 내렸다. 수긍하기로 했다. 매듭은 짓는 것이다. 내 안에서 정리하고 꼭꼭 묶어 잘 지어 그 존재를 인정하고 눈길을 주며 내가 가야 할 길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데 쓰는 것이다. (이숲오, 매듭의 축제, 20230923) 


이숲오 작가님의 글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매듭을 풀려고 안간힘인데, 수직으로 지어 올려 스스로 풀리게 하라니. 내 영혼이 땅에 털썩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지난 열흘, 떨어진 영혼을 주워 챙기며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아픈 통증을 기억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흰 종이를 펴고 0.3밀리 펜을 들었다. 새벽 드로잉 수업이 아닌 나 스스로 시간을 처음으로 잡고 앉아 견고한 매듭 쌓기를 했다. 그리고 Embroider라고 제목을 지었다. '수놓다'라는 의미다. 하나씩 매듭을 짓고 마음을 정리하고 다음 매듭을 잇는다. 하나의 매듭마다 그 만의 표식을 하며 색을 입혀 내 이름의 의미처럼 수를 놓았다.


매듭은 짓는 것이다.

Untangle (230923) vs. Embroider (231004)

삶은, 아프게 깨닫는 순간 한 걸음 나간다는 걸 다시 실감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많이 아팠다.


이렇게 하나의 매듭이 지어진다. 그 위로 쌓아지는 매듭에 위로와 관심을 넣어 계속 지어 올린다. 어느새 매듭은 그 스스로 시간의 농도에 빛이 바래어 사라질 것이다. 매듭이 사라지며 남기는 것은 시간을 담은 나만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가며 내 삶을 응축시켜, 결국 나 자신도 매듭으로 지어 올려져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을 다 쏟아낸 그리기는 나를 차곡차곡 정리하고 상처를 아물린다. 이렇게 나는 매일매일 새롭게 다시 일어나 한 걸음씩 가면 된다. 




https://brunch.co.kr/@voice4u/469

                                                   감사합니다.



사진 - 우리집 베란다 유리문 낙서, '사랑해요,' 우리 가족이 매일 매일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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