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슬픔의 경계, 영화 크리에이터 [스포일러 가능]
코로나 3년간 영화관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니 내가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 거의 꼼짝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벗자마자 다시 영화관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요즘은 몸과 마음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소가 되어 슬프다. 팝콘을 먹어도 장면이 좀 부산스러울 때 와작 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무의식적으로 벌컥 반응하지만 참을 도리밖엔 없다.
코로나 시기에 장만해둔 커다란 스크린과 프로젝터로 누추한 극장을 집에 세팅하는 날이 더 많은 요즘이다. 지난 영화들도 좋다.
The Creator(2023)의 예고편을 보는 순간 마음을 잡은 건 에어로 스미스가 부른 Dream on (1973)이라는 영화의 주제가였다. 예고편이 극적으로 흐르는 순간을 비집고 올라온 메시지들.
All the things come back to you... dream on, dream on... come back to you.
모든 것들이 네게 돌아와... 계속 꿈을 꿔, 꿈을... 네게 돌아오는. (맘대로 번역^^)
Dream on이라는 표현은 on에 집중해서 계속 꿈을 따라 가라는 의미로 동기 부여할 때 사용할 수 도 있지만, 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절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따위 생각하지도 마, 꿈깨.' 뭐 이 정도로 구어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주변 맥락을 보고 의미를 받아야 한다.
Sing for the laughter, sing for the tear
웃음을 위해 노래해, 눈물을 위해 노래하는 거야.
Dream until your dream come true
너의 꿈이 이뤄질 때까지 꿈을 꿔.
그런데 예고편의 장면들과 이 dream on이 잘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영웅 서사가 아니라 메시지를 주고 싶은 거구나. 영화관행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400석에 가까운 돌비시스템 영화관에 토요일 오후인데 예약한 사람이 10명도 안된다는 거였다.
한스짐머는 그냥 영혼을 맡기고 듣는다. 소리가 좋은 영화관이 참 좋다. 드뷔시 달빛이 나올 때 너무 마음이 가라앉고 슬픔이 왔다. 영화의 감동적인 장면에 간간이 쓰이는 드뷔시 달빛은 프랑스 시인인 폴 베를렌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라 한다. 폴 베를렌(1844-1896)은 격정적인 열정에 정상적인 삶을 내팽개친 프랑스 시인이다.
폴 베를렌의 Clair de lune(달빛)도 꿈과 현실 사이, 불안한 기쁨과 슬픔 사이의 그 경계를 드러낸다.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고뇌하는 불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치 환상적인 분장 아래서 슬픈 듯이
Tristes sous leurs déguisements fantasques.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피부가 다른 사람들, 인간과 로봇이 자연 속에 평화롭게 사는 건 내가 꿈꾸는 세상 그 이상일 것이다. 인간다운 AI, 진화하는 AI들은 지구에서 사는 인류 생명의 정의를 바꿀지언정 지구를 영원히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는 얼마큼 인간이니? 너는 얼마큼 로봇이니? 그런 대화가 아무렇지 않으면서.
아시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논밭들, 눈 쌓인 산들, 그 평화와 장엄의 서사는 우리 모두의 것이니 같이 조화를 이뤄 공존하자는 메시지로 크게 다가왔다. 자연을 제대로 잡은 그 영상미에 흠뻑 빠져있었다. 네팔의 설산이 지나갈 때는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아...
인간이 로봇을 함정에 빠뜨려 파괴하려는 정치적 패러다임은 결국 권력 유지를 위한 자작쇼였다고 생각했다. 인간과 로봇, 대체 누구를 믿을 것인가. 대량 살상으로 정치쇼를 하는 건 인간만이 가능하다. 그러니 인류를 구할 궁극적인 최종적인 무기라고 규정했을 것이다.
나는 로봇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다. 공감을 부르는 'Mother, 엄마'라는 단어 하나로 영화 후반부를 설명할 수 있다. 생명의 시작인 곳, 생명을 꽃피우는 곳, 영원히 이어지는 아름다운 의미, Mother.
궁극적인 무기, Alphie 역의 배우가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독일계 미국인의 핏줄이라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닐 것 같아 메모해 둔다. 감독은 아주 치밀하게 공존과 조화, 공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슬픈 세상에서.
Like it or not, you’re part of us now.
좋든 싫든 넌 이제 우리의 일부야.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제목을 'Dream on 드뷔시 달빛'으로 하기로 했다. 우리가 기쁨과 슬픔사이 경계에 있어도, 그 달빛 아래 불안하게 서 있어도 계속 원하는 것을 향해 꿈을 꾸고 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사진 - 눈물, 다른 영화 후 엔딩 크레딧 중 확대 스캔 (230625), Alphie, 사진 캡처 from IMDB 공식 예고편
참고 - 폴 베를렌 <달빛> 및 드뷔시 <달빛> (Debussy: Suite bergamasque, L.75: III. Clair de lune), 조성진 버전, 나무 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