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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Sep 24. 2023

[음악] 재즈, 진하게

재즈 쇼케이스, 신라의 달밤을 재즈로? 한국 대중가요, 재즈로 날다

음악이 부르는 곳에는 그냥 갑니다. 마음의 매듭을 스르르 풀어주는 재즈 하러 갑니다. 귀한 기회, 재즈 쇼케이스입니다.




우리를 쥐고 흔들던 바이러스 시대가 정말 가버렸나 봅니다. 조심조심 창문을 열고 가을 공기를 흠뻑 마시며 채비를 합니다. 다시 세상에 도전합니다.


특별한 날에만 신던 하이힐 부츠 굽을 고쳐 신고, 저의 탄생석 보라색 아메시스트 귀걸이와 팔찌를 합니다. 모자를 눌러쓰고 로브를 길게 걸치고 그야말로 중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요즘 세상은 무서워요.


새벽, 그림을 배우며 쌓아둔 마음의 매듭이 향한 시간을 알아내서, 미래를 향해 수직으로 짓든, 과거와 현재로부터의 앙금을 수평으로 풀어내든,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재즈 속에서요.

강남 신사역에서 한적하게 걸어내려가 예술가방에 들어갑니다. 예술할 양식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어요. 예술가방이니까요. 연주자가 없는 공간이지만 벌써 풍성한 공기가 느껴졌어요.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걸까요.


퍼커션이 궁금했고, 바이올린의 조화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흥분되었습니다. 재즈는 피아노나 더블베이스 라이브를 찾아다녔었거든요. 곡 이름들은 생각나지 않고 소리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재즈라는 소리.


기획자의 공연 소개와 피아니스트 민세정의 해설이 곡 사이사이마다 들어가 예술가방의 공기를 밝게 부풀렸어요. 바이올리니스트 홍원화의 수줍은 미소와 눈 감은 여러 표정들, 한 걸음 한 걸음 흔들거리는 몸짓, 예술가의 본능으로 다른 두 연주자와 연주하며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퍼커셔니스트 곽지웅의 여러 편곡 이야기는 연주 내내 가슴 뛰는 소리의 강약에 집중하게 했어요. 슬픈 노래를 밝고 당돌하게 편곡하는가 하면, 빠른 곡들을 잔잔하고 슬프게 들려주면서 재즈의 다양한 변화를 우리 가요를 통해 진하게 맛보게 해 주었습니다.


'행복을 주는 사람'이 처음 나올 땐 낯선 아름다움으로 갸우뚱했지만 이내 재즈로 어우러지는 가요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피아노가 가요에서 쇼팽, 에릭사티를 얹고, 바이올린의 현이 뜯길 때, 퍼커션의 소리가 약하게 잦아들 때의 예민한 박자까지 귀 기울이면서 한국 대중가요의 편곡이 이렇게 재즈와 어울리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개여울은 김소월의 시로 정미조가 원가수지만 최근 아이유가 편곡해 부르며 다시 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곡인데 재즈로 들으니 마음의 그리움이 더 진해졌습니다. 무척 아름다워요.

바이올린을 참 좋아합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나올 때 가슴이 저리며 눈물이 났습니다. 눈을 더 질끈 감고 또 감았지만... 거기가 제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되돌아봅니다.


이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친구에 대한 기억과 실컷 사랑했어도 되었을 시간의 회한들을 이제는 편하게 보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이 마음속 매듭을 풀어도 된다는 허락 같았습니다. 결국 사람은 이렇게 이기적이구나 체념하면서도 현재와 미래의 사랑을 위해 한발 내딛는 의식을 했습니다.


음악은, 재즈는, 특히 제가 알고 있던 익숙한 가요를 품고 있는 재즈 선율들이 신선한 변화로, 마음의 정화로 제게 왔습니다.


마음이 묵직할 때, 응어리에 눈물 날 때, 앞으로 올 두려움을 고이 인정하며 하나씩 풀어가고 싶을 때 재즈 라이브를 추천합니다. 재즈의 자유로운 변주들이 삶으로 어느새 들어와 있을 겁니다.




한국대중가요의 재즈 편곡 공연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자유와 변화와 감동을 다음 공연에서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기쁘게 놀라며 감동한 재즈 여행이었습니다. 딸 아이와 함께 한 토요일 오후, 재즈는 옳은 길입니다.



리플렛 - 재즈가가요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azzgakayo/ 

사진 - 피아니스트 민세정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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