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인문학적 재즈 읽기 / 재즈에 관해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다니
재즈에 관한 책을 한 번도 안 들여다본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쌩초보가 간간이 귀에 걸고 다니던 재즈라는 리듬을 더 알고 싶어 도서관을 뒤진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재즈 카페도 콘서트도 그냥 맡기고 몸도 마음도 흔들다 오면 며칠을 그 여운이 날 행복하게 하듯 책도 콘서트처럼 내 마음을 길러주길 바랐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글의 건조함과 지루함은 나를 재즈와 더 멀리 떼놓았다. 정보가 아니라 재즈를 달라고!
귀에만 들리는 재즈 말고, 귀로도 읽을 수 있는 재즈였으면 하는 갈망은 재즈가가요 쇼케이스에 다녀온 후 다시 한번 책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재즈를 잘 사랑하도록 안내하는 책, 오래 멀리 돌아와 이제야 만난다.
목차
1장. 재즈는 음악이다.......음반 / 녹음
2장. 재즈는 개성 있다.......블루노트 / 복제 / 인용 / 저작권 / 전형성 & 정통성
3장. 재즈도 역사다.......크리올 & 흑인노예 / 래그타임 / 재즈 악기의 삶 / 콤플렉스
4장. 재즈는 성취했다......예술사 / 유럽고전음악 / 비밥 / Kind of Blue
5장. 재즈는 얼굴이다......재즈 연주자들, 레스터 영 / 3대 디바 / 클리포드 브라운 / 마일스 데이비스 & 애시드 재즈 / 말러 & 케인
6장. 재즈는 스승이다.......째지다 / 어려웠다 / Thanks, young man / 내게 재즈란
전자책(eBook)으로만 나와 있어 알라딘 책장을 설치했다. 사실 전자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내 생애 첫 책이기도 하다. 전자책은 종이책을 읽고 나서 너무 두꺼워 가지고 다니기 힘들 때 어디서나 생각나는 구절들을 찾아 다시 읽고 싶을 때 펼쳐보곤 하는 용도였는데, 이번에 전자책의 장점도 알게 되어 기쁘다.
'저자의 말'을 읽으며 조심히 산책하듯 들어간다. 에필로그로 가서 전체 흐름을 짚고 시작해도 좋다는 안내에 따라 먼저 들러 읽은 에필로그가 일목요연하게 핵심만 넣은 팸플릿처럼 깔끔하다. 재즈를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희망을 가졌다. 이번에는 이 책이 내 안의 재즈 갈증을 풀어줄 수도 있겠구나.
'음악을 상상으로 만족해야 한다면 정말 끔찍하다(스마트폰 e북 p.12)'를 읽자마자 아, 정말 얼마나 끔찍할까. 이 마음을 이해하며 하나씩 펼쳐 나갔다. 인터넷에서 해당 작곡가나 연주자 그리고 그 음악들을 들어가며 책을 읽으며 전자책의 매력에 빠졌다. 음악을 데려다주는 전자책에 무척 행복하다.
헉! 하며 뒤로 물러났던 엉킨 실타래 같은 프리재즈를 몇 분 맛만 보고. 작가가 꼽은 Miles Davis의 1949년 앨범 <Birth of the Cool>을 지나 1959년 앨범 <Kind of Blue>에 왔다. 요즘 내 가을을 받아주고 있는 Kind of Blue다. 아, 이런 감성이 필요했던 거야, 마음이 기뻤다. Mack The Knife에도 여전히 흔들흔들.
재즈의 블루노트에 신기해하며 코드를 찾아 헤매고 딸아이와 이야기하는 시간도 소중하다. 피아노, 관악기, 현악기가 어떤 방식으로 그 미묘한 블루노트를 살려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피아노의 한계에 대해 궁금했다. 피아노의 검정 건반은 딱 정확한 반음이니까. 정확하지 않은 반음 자체의 얇은 경계를 관악기는 바람의 양과 속도로 살리는 걸까.
인터넷 자료를 링크해 두고 계속 읽는다. 계속 재즈를 듣는다. 이런 여정들을 기쁘게 하게 하는 전자책이다.
재즈와 연결하여 생각하지 못했던 인용, 저작권, 전형성과 정통성에 대한 이야기가 내가 알고 있던 재즈를 조금씩 살찌우고 있었다. 내 안에 자라나는 재즈, 물 주기에 한창 즐겁다.
3장 재즈의 역사는 노예였던 흑인들의 고단한 재즈 여정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눈물이 그렁해지는 순간들이 더 재즈를 진하게 들을 수 있게 마음을 채웠다. 재즈 악기에 묻어 있는 삶에 대한 작가의 동정심과 공감들이 수려한 필체로 그려져 더 밀착하며 들여다볼 수 있었다.
유럽 재즈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 뉴올리언스 재즈와의 지속적인 연결 고리, 그 영향들, 내가 속속들이 알고 싶은 것들이 그대로 녹아 있어서 놀라면서 읽었다. 역대 족적을 남긴 재즈 연주자들의 삶에 대해 읽을 때는 그 시대적인 암울함에 같이 우울한 시간이었다. 내 재즈의 시간이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작가는 Miles David를 만났던 건가. 온몸에 전율이 왔다. 나라면 그 순간, 심장이 터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Thanks, young man이라는 말을 평생 동안 마음에 그리고 작가의 재즈에 담아 살아갈 거라 생각했다.
희원이 작가님께서 제가 재즈에 관한 시간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조근조근 재즈 답글도 주시고 음악 링크도 달아주셔서 더 많이 재즈를 채우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희원이 작가님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글쓰기 방식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재미있게 따라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재즈에 관한 책을 쓰신 걸 알고 흠칫 놀랬어요. 주제넘게 실수를 하진 않았는지 괜히 걱정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재즈를 접하신 후 그 깊이와 넓이를 이어가는 작가님께 경의와 감사의 마음 듬뿍입니다. 브런치 필명, '희원이'를 반대로 읽으면 '블루노트 인 재즈'의 저자인 이원희가 됩니다. 신기합니다.
그분이 그분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기쁩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희원이 작가님의 '현대 유럽 Jazz 감성' 글과 음악 - https://brunch.co.kr/@xy212/333
저는 작가님의 다음 책으로 갑니다. <재즈문화사> 종이책, 천천히 여유있게 산책하듯 읽겠습니다.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