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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Dec 18. 2023

알코올 뒤에

레슬리의 용기를 내게

일단 뚜껑을 돌려 열고 나면, 또는 코르크를 잡아 빼고 나면 다시 있던 자리에 가져다 두기는 힘들다.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어느새 잔에 따르기도 전에 목으로 넘어가는 뜨거움에 화상을 입는다.


사람의 상처는 제 각각이고 상처의 깊이도 모두 다르다. 상처가 깊다고 보드카를 마셔야 하거나 긁힌 상처라 해서 청하 한잔이 어울리는 건 아니다. 상처는 당사자에게는 100% 순도의 아픔일 뿐이다.


보드카나 고량주나 꼬냑이나 산사춘이나 와인이나 그때그때 어떤 상처가 생길 때마다 쓰라리도록 들이붓게 되는 소독약 같다고 믿으며 두 번째 잔을 채워 마시고, 세 번째부터는 잔에 마셨는지 병 째 마셨는지 기억해 내지 못한다.


그러다 말짱한 정신으로 눈으로 술을 먼저 마시고 있을 때가 있다. 한 번 눈에 꽂히면 눈물을 흘릴 걸 알면서도 뚜껑을 돌리고 있고 뚜껑을 다 돌렸다 싶을 땐 이미 속 쓰림에 다음 날을 무겁게 베고 누워있는 것이다.


세상이 자신을 몰라줘서가 아니다. 사람이 자신을 몰라줘서가 아니다. 그 스스로가 자신을 잘 모르니 몽롱한 백지에 자꾸 뭔가 써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다 쓰고 나면 잠이 몰려와 기억이 소진되고 기억은 꿈에서 다시 소멸한다. 깨어나면 다시 하얗게 백지다.


해결할 실마리가 매일 백지로 돌아오고 있는 좌절감이 다시 되돌아오라 손짓하는 알코올의 모습이다.


뚜껑을 돌렸다가 다시 잠그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영화, '레슬리에게'를 보면서 두 주먹을 있는 힘껏 쥐고 속삭였었다. 제발 그러지마...


딱 한번! 다시 잠글 수 있는 힘은 생명의 힘이다. 삶의 어마어마한 용기다.


"I am sick!"

"난 아프다고!"


레슬리가 했던 말을 하지 못했지만, 혼자서 힘내는 법에 익숙한 나는 터널을 기어이 빠져나왔다.


알코올 중독은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단주(斷酒)만이 해결인 중증도의 병이다. 단 한 방울도 결코 허락해서는 안 되는.


누구에게나 중독의 선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관대한 생각을 한다. 나는 그 선을 위태롭게 왔다 갔다 한다. 가족이 허락하는 그곳에서 가족이 허락하는 노래를 부른다. 가족은 나의 안전지대다.




사진 - 레슬리에게 영화 포스터 부분 컷 20231216

#라라크루 (2-8) #라라라라이팅 연말연시 알코올 주의하세요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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