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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23. 2023

당신의 창발

[김상욱 북토크, 2023] 돌연히 나타난 새로운 즐거움

지난 6월, 교보에서 진행했던 따뜻한 물리학자 김상욱의 북토크에 갔었다. 그가 내내 이야기했던 '창발(Emergence)'이 몇 개월 동안 마음속에서 불쑥불쑥 아무 때나 튀어 올라 오래 생각에 빠지게 한다.


인류 발생의 그 신기한 창발에서 시작해서, 인간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바로 지금의 사소하지만 즐거운 창발까지, 의미를 가진 많은 삶의 꼭지들이 생생하게 사는 힘을 주는 것, 그것이 나 창발이라 믿는다.


그런 지근하고 묵직한 믿음이 그의 북토크가 끝난 지도 몇 개월이지만 여전히 내 가슴에 밝혀진 불로 난 나 자신의 등대가 되었다. 다시 혼자로의 등불로 돌아가려는 건가. 그런 두려움은 다시 김상욱의 북토크 무대로 나를 되돌린다.


따뜻한 물리학자라는 말이 참 좋다. 물리학자가 따뜻하다고? 맞다 그는 따뜻하고 다정하다. 살짝 짧게 말하는 귀여움과 목소리의 편안함이 그의 소년 같은 눈빛과 참 잘 어울린다.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본 그의 책에서 동료의 죽음에 대한 좌절과 허망을 읽고는 김상욱을 가슴속에 각인했었다. 좋은 사람 같다.


'출간'이라는 말속에는 보통 여러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들이 묻혀 있는 경우가 많아 내겐 두려운 의미다. 그의 '출간'작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도 그 동료의 죽음에 대한 그의 솔직한 느낌 때문이었다. 조직에 대한 공포, 어쩔 수 없는 절망들... 그런 느낌들을 과감히 밖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믿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만났던 그와는 다른 그를 보았다. 실물을 보는 북토크인데 이상하게도 로봇 같은 느낌이었다. 다소 수줍고 경직된 로봇이 열심히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고개를 쑥 빼고 AI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들었다.


북토크라며 그가 쓴 책 내용을 설명하는 사이사이 나는 그의 긴장된 눈빛을 읽고, 혹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그의 마음의 안달을 읽고 있는 나, 내가 정상이 아닌 건가. 온라인의 그가 오프라인으로 나왔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서 신기했다는 건, 내가 북토크에 앉아 그를 듣고 있다는 게 현실이 아닌 것 같아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밖으로 나와 실제 세상에 앉아 있어! 그런 비현실적인 이질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진짜였을까.


북토크라기보다 물리학 강의가 끝나고 '당신의 창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김상욱은 잠시 곰곰하다가 '결혼'이라고 하더라. 아마도 독신주의였을까. 연애의 신비로운 감정의 정착을 결혼이라고 한 걸까.


그가 결혼을 창발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가 나누고 있는 여러 가지 색깔의 사랑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아내를 얼마나 애틋하게 여길까 아이를 얼마나 눈에 넣고 싶어 할까. 일하다가도 집에 가고 싶어서 저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건 아닐까. 빨리 가려고 자동차 시동을 급히 걸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져 혼자 머쓱해서 훗! 하고 웃지는 않을까. 여하튼 그의 이쁘고 감성적인 모습을 상상했다.


그 '창발(Emergence)'에 세상을 향해 든 내 고개의 각도가 달라지고 눈 빛도 달라졌으리라.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그 북토크 시간이 이후 내 많은 시간들의 색깔을 바꾸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면서.


'창발(Emergence), 돌연히 나타난 새로운 즐거움'


그럼 나의 창발 뭔가.


내게 온 돌연한 즐거움, 어떤 순간들이 미세한 점처럼 흩어져 있다가 커다란 물방울로 하나가 되듯 마음이 커지는 시간이다. 신기한 축복, 그 시간, 신기한 축복, 그 사람, 신기한 축복, 그 영원으로의 길, 매 순간 기쁨으로 감탄사를 흘리며 사는 요즘이 나의 창발이다.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읽고 쓰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만나는 이 모든 시간이 나를 만들고 있다.


30년 후쯤, 누군가 네 인생의 창발의 무엇이냐 하고 질문한다면 '30년 전 그때'라고 대답할 것 같은 요즘이다.


당신에게 '돌연히 나타나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창발(Emergence)'은 무엇인가.



사진 - 김상욱 북토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슬라이드 중 20230621 이 책을 어서 읽고 후기를 쓰고 싶은데 너무 어렵고 두꺼워서 진도가 안 나간다. 꼭 끝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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