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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Nov 23. 2023

사부작 하루

0529

나의 하루는 4부작이다.

쪼개지 않으면 너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붙들어 두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나눈다.


제1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아침부터 힘을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오전의 루틴은 온통 힘이 들어가는 것들의 향연이다.

한동안 바닥으로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스텝퍼로 허공 위를 오른다.

15분이 지나면 이게 무슨 운동일까 싶다가도 땀이 흥건하게 몸 전체에 흐른다.

초기에는 자주 스텝퍼에서 내려오고 싶은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다.

한 발만 옆으로 옮기면 편안한 몸이 되는데 최대한 이겨보려고 다른 생각들로 나를 따돌렸다.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괜찮은 힘겨움'이 나쁘지 않았다.

고통의 껍질들을 하나씩 벗겨나가니 다른 결의 고통이 느껴졌고 나름 몸의 변화를 도와주었다.

이제는 그간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눈을 뜨면 바로 올라간다.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지만 나의 생각들은 무수하게 많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어디라도 달려갔다 온다.


제2부 계속

날마다 지속하는 것들이 비교적 많고 다양한 편이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는 것부터 로사리오를 바치며 명상의 시간을 가진다거나 단순하게 반복되는 것들이 풍성하고 지루하지 않다.

매번 같은 행위도 날마다 다른 색깔을 품고 있고 다른 향기를 가지고 있어서다.

지치지 않으려면 동일한 일이라도 매일의 고유번호를 달아주고 관리하는 것이다.

간헐적인 것보다 연속적인 것에서 더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멈출 때의 나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같은 것을 다르게 느끼는 편이 다른 것들을 익숙하게 경험하는 것보다 더 좋다.

계속은 인공보다 자연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제3부 가볍게

최대한 가벼운 것에 열광한다.

언어도

식사도

타자와의 관계도

발걸음도

호흡도

대화도 나에게 스스로 옭아매는 계획들도

무거운 것들은 죄다 진지함 곁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벼운 것들이 온통 소홀함 옆에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제4부 행동하다

움직이는 것만 행동하는 범주로 두는 것은 좀 억울하다.

생각안에서 무수히 행동하는 것들도 포함시켜 주면 고맙겠다.

늘 작은 움직임부터 큰 행위까지 행동하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행동함으로써 마음이 단련되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우울의 방으로 기어들어가지 않으려면 움직임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 달려가는 것을 보다가 나의 가느다란 다리를 바라보면서 나무란다.

자, 이제는 가동해야지.

왼발이 바닥이 닿지 전에 어서 오른발을 들어 올리렴.

마음에만 쟁여둔 몸짓들을 끄집어내면 다시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오늘도 이렇게 사부작 사부작대다가 저무는구나.

나의 하루는 늘 사부작대는 4부작이다.


https://brunch.co.kr/@voice4u/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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