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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17. 2023

생명으로 돌아오기

생명을 채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

한 시기의 격정이 지나가면 잠시 되돌려 바라보고 다시 걸어 나갑니다. 쐐기 풀에 뜯긴 듯한 따끔거림과 삶에 대한 집착에 뜨거웠던 한 주가 지나갑니다.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에 깨어 어둠을 뒤적이며 편안합니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정리가 되고 있나 봅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슬프고, 마음이 슬프면 몸이 아픕니다.


하지 않던 것들을 합니다. 커피대신 홍차, 푹 꺼져 앉아있던 소파를 두고 베란다 차가운 창문에 기대어 서서 멍하니 밖을 봅니다. 차가 거의 지나 다니지 않는 거리는 왜 저리도 밝은 걸까. 4시도 채 안된 거리를 뒤로하고 어두운 거실 흔들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생각에 빠집니다. 오늘도 앞으로 갔다가 뒤로 한발 물러나기도 해야겠지. 뒤로 가다가도 빛을 보면 다시 앞으로 가야겠지. 


요즘은 글을 읽고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습니다. 통찰의 글, 영화의 심리적 분석 글, 일상의 소소한 행복 글, 사랑이 묻어나는 가족 이야기들에 느긋하고 편안한 행복을 느낍니다. 어떤 날은 발목 높이에서 가볍게 찰랑이며 살고 어떤 날은 허리 높이쯤에서 평범하게 그럭저럭 삽니다. 


그러다 만나는 어떤 글은 가슴 뛰는 심장 높이에서 제 시간을 멈추게 하기도 합니다. 글을 읽다가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이런 새로움과 흥분이 있을까. 혼란과 충격에 한동안 마비된 시간 앞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세상 보는 시선이 전혀 다른 글들은 중독된 듯 갈증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도파민 같은 거죠.


제게는 도파민이지만 작가에게는 외로움이나 고뇌일 수도 있겠지요. 작가 스스로에 대한 진한 가여움과 외로움의 공포가 글에 그대로 투영되기도 합니다. 그런 글을 통해 저의 글쓰기에 대한 연민과 부족함이 들춰집니다. 작가의 외로운 길이 한없이 안쓰럽지만 저를 자극해 주니 기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만나는 순간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제 본능과 직감을 믿으며 등불이려니 합니다. 산을 오르고 영화를 보고 갤러리를 가고 드라이브를 하고 에스뿌레쏘를 마시고... 혼자 하는 것들에 익숙하지만 글을 읽을 때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습니다. 기쁘게도 나누고 슬프게도 나누고 외롭게도 나누는 그런 시간들이 좋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모여 하루가 됩니다. 지난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저의 생명을 채우고 있습니다.



사진 - 생명의 나무, 이순희 사진전, 서울 갤러리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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