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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29. 2023

새벽의 색깔

20X10cm의 키친타월

그런 날이 있어

두 시가 채 안된 새벽에

정신이 말짱해지는 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모범을

그 어느 때보다 바르게 실천하고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


어둠 속에 더듬더듬

스마트폰에 유선 이어폰을 꽂으며

드뷔시 달빛 속으로 들어가

쇼팽의 녹턴 B 플랫에 가라앉아

나 밖에 없는 내 방에서

소리를 내 안에만 가둬두는 시간


읽을 책이 높이 쌓인 그 뒤쪽 구석에

세로 20cm 가로 10cm 네모로

삼백 개쯤 붙어있는 키친타월

괜찮아 내가 필요해도 돼

깜깜하게 앉아 두 줄 이어폰으로

정맥으로 흐르듯 내게 들어오는

소음으로도 앙금이 가시지 않아

나는 기어코 너를 한 장 떼어내지


중간으로 얼굴을 감싸

커다란 타원으로 내 눈을 찍고 나

그래도 괜찮아 마음껏 너를 내놓으렴

그렇게 나를 온전히 위로하는 너

이제는 반으로 접을 거야


도톰해 10X10cm로

코를 한번 힝 풀어도 든든하게

단단하게 끄떡없는 나의 키친타월

대각선으로 10cm 이등변 삼각형

그 양쪽 끝이 내 눈을 덮고 나면

나는 조금 편안하게 마음을 내려놔


저 삼각형의 이등변이 접히고 접혀

저 삼각형의 밑변과 닿게 되는 날

내가 너에게 수렴할 거야


여전히 내 책상 한편에 우뚝 서 있는

20X10cm 나의 키친타월이

수 백개 한 칸씩 내 얼굴에 닿기 전에

내 마음이 편안하게 눈 감길 바라

내 몸까지 아프지 않게 편하길 바라

마음이 아프면 몸이 달아나고

몸이 닳으면 마음 둘 곳이 없다네


때로 허무한 새벽이 되어도

가끔 먹먹함이 한꺼번에 밀려와도

내 책상 저 구석에 우뚝 서서

나를 위로하는 20X10cm의 키친타월


오늘은 딱 한 장만



사진 - 새벽의 책장 in my room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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