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면에서 경박한 인간들에게는 존재하는 사물보다 존재하지 않는 사물들을 묘사하는 것이 더 쉽고 책임감을 덜 느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건하고 양심적인 역사 기술가에게는 정반대이다. 그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고 개연성도 없어 보이는 그런 사물, 경건하고 양심적인 인간이 그것을 존재하는 사물로 다루는 것을 통해서만 그것의 존재와 탄생 가능성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그런 사물만큼 묘사하기 힘든 것도 없지만 그것만큼 인간의 눈앞에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 알베르투스 세쿤두스(유리알 유희의 선조), <영혼의 결정화에 관하여> 중, p.8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데미안 원서에 들어 있는 토마스 만의 서문 때문이었다. 그 서문에서 유리알 유희와 그 명인, 그리고 그 명인이 만났던 인물을 헤세와 토마스 만 자신으로 동일시하며 언급한 부분이 도화선이었다.
헤세에 대한 토마스 만의 애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데미안 서문은 감동이었다. 이렇게 전적으로 믿고 지지하는 동지가 한 명 만이라도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으로 너무 암울한 히틀러 체제 하에서 둘 모두 정권에 반기를 들던 인사들이었으니 박해당하며 글을 썼으며 둘 다 망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주 만나지 못했더라도 둘의 보이지 않는 유대는 컸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펴고 차례를 훑어보며 쉽지 않겠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재미없는 대학의 교양서적 제목과 같은 역사 개론이라니 단단히 준비하고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서문만 세 번 읽었다. 처음, 책을 다 읽고, 그리고 여전히 미진한 느낌에 한번 더 읽었다.
방대한 양만큼 주려는 메시지도 방대하려나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유리알 유희의 선조라는 알베르투스 세쿤두스의 글(p.8)과 유희의 방식과 진행이 묘사된 두 페이지(p.360-361), 유리알 유희의 명인의 유고시 들 중 하나인 '유리알 유희(p.622)'만 이해해도 헤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묘사하여 그것을 실천하는 정신 능력에 대해, 인간이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헤세의 시대에 부족했던 정신적인 고양 활동은 지금 이 새대에도 여전히 결핍이다. 사람들은 달려가려고만 하며 빨리 소유하려고만 한다. 생각을 경시하고 사고하는 시간은 무시되기 일쑤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안주하는 삶을 꿈꾸며 조금씩 썩어가고 있는 자신의 살점을 그냥 보고만 있다. 당장 고통이 없다 해서 모든 것들이 제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세 편의 짧은 전기는 유리알 유희 명인의 일대기를 축약하며 상징한다. 나는 유리알 유희 명인의 순수 시기, 명인의 시기, 변화를 받아들이는 시기를 세 편의 전기에서 재회하며 헤세의 간절함을 읽으려 노력했다. 특히 두 번째 편인 '고해신부'는 마음의 울림이 컸다. 자신의 원죄에도 가볍게 흔들리는데 어찌하여 다른 사람의 고해에 상응한 해법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이야기들이 깨달음으로 귀결된다. 자기 자신이 열려있지 않고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어떤 깨우침도 불가능하다. 전체를 받아들이고 구체적인 것을 제대로 표현하여 결정화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그런 힘을 스스로 길러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 책이 주는 큰 화두이다. 가르치는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유리알 유희는 추상적이며 조화와 균형, 무궁무진하게 서로 영향을 주는 삶의 공식이다. 그 유리알 유희를 자신의 상황에 맞춰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를 상세히 말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후 자신에 인생에 충분히 녹아내린 그 핵심을 잘 추려낸 것이리라.
유리알 유희는 모든 학문에 적용될 수 있다. 그 정신 활동으로부터 여러 다양한 학문을 관련시키면서 생겨난 추상적인 원리와 공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원리와 공식으로부터 새로운 창발, 연결, 연관, 그들의 유사성, 공통점을 발견하며 더 고차원의 정신 활동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조화로운 시대를 꿈꾼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통섭의 실천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통섭은 요원하다. 끼리끼리 문화가 고착된 지 오래고 부를 얻기 위해서라면 보이지 않는 악의 소통도 마다하지 않는다. 숫자에 치중하며 자기 이기에 집착하는 삶을 사는 한, 정치, 경제, 사회, 도덕적 문제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문제기 생길 때마다, 갓난아이 머리마다 현금을 얹어주며 비루하게 정치하는 곳, 임기응변식 문제 풀이에 급급한 곳, 바로 내가 사는 이런 시대를 헤세는 잡문 시대라 규정한다. 그 반대의 시대, 정신과 자연이 조화롭게 일치하는 시대는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인간은 정신이며 사랑이고 인간의 내면에는 본능을 거역하고 본능이 순화되기를 갈망하는 무언가가 깃들어 있음을 믿고 그것으로 영혼을 살찌워야 한다. (p. 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