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Jan 09. 2024

쇼핑과 재봉틀

#라라크루 화요일 글쓰기 주제 - 옷

"사고 싶은 거 다 사야지!"


나는 백화점을 간다. 아주 아주 가끔씩 간다. 사람 많은 밀폐된 공간을 즐기지 않는다. 나의 쇼핑은 전략적으로 빠르다. 바지가 필요하다. 또는 구두를 사고 싶다. 인터넷 검색해서 디자인을 고르고, 어느 백화점 또는 어느 길거리 상점에서 파는지 딱 골라 바로 그 한 곳으로 직진한다. 


입어 본다. 신어 본다. 잘 맞는다. 몇 가지 색깔이 있는지 물어본다. 다 산다.




그렇게 사고 나면 오래오래 입는다. 질리지 않게 색깔 바꿔 입다가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지고 낯설어질 때 재봉틀을 꺼낸다. 허리를 뚝 잘라 티셔츠에 통치마를 붙여 원피스로 만들어 입는다. 가족들이 그 옷을 입을 때는 같이 다니려 하지 않는다. 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입으면 된다.


조금 짧은 소매에는 싫증난 다른 옷 다른 색깔로 앞쪽 통이 넓은 소매를 뚝 잘라다가 붙이면 아주 독특한 외출복이 된다. 운동할 때 입고 가니 한 할머니께서 유심히 보신다. 만들었냐는 말씀에 웃으면서 '네!' 하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이네 하신다. 칭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코로나 때는 천 마스크를 일곱 색깔로 사서 입는 옷에 맞추며 견뎠다. 매일매일 기분에 맞춰서 다른 색깔로 하며 웃고 다녔다. 그렇게라도 내 기분을 맞춰주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시기였다. 무지개 마스크가 날 살렸다.


오늘 주제는 '몸에 걸치는 헝겊류 모두'지만 번외로 한 가지 더 하자면, 나는 가죽 신발도 썩둑썩뚝 오려서 개조하기도 한다. 가죽용 재봉틀이 없으니 손이 고생한다. 굵은 바늘이 가죽으로 안 들어가고 내 살 속으로 뜨겁게 들이치기도 한다. 그래도 기어이 하고야 만다. 20년 전 개조한 버건디 가죽 부츠는 아직도 애지중지다. 


찰나 쇼핑 한 번에 아껴 쓰고 바꿔 달고 다시 개조하게 도와주는 재봉틀로 오래오래 지루하지 않게 산다.


그런 내가 기쁘다.



#라라크루 #라라라라이팅 화요갑분 글쓰기 - 옷은 사고 고치고 붙이며 걸치는 나의 상상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아있는 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