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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r 10. 2024

가여운 것들

[영화] POOR THINGS by Yorgos Lanthimos

[no 스포일러는 없다!]


색깔 - 흑백 vs. 컬러

백지 - 기질 vs. 환경

본능 - 매춘 vs. 천직

성장 - 외부 vs. 내부

체제 - 자본주의 vs. 사회주의

균열 - 고착 vs. 허락

엔딩 - 완결 vs. 환각

Aren't I a poor thing? 나는 '가여운 것'이 아닌가?

본능을 까뒤집어 입체적으로 촘촘하게 배열한 균열의 환각적 엔딩을 보여주는 성장이야기로 오시마나기사(감각의제국), 캐네스브래나(프랑켄슈타인), 박찬욱(아가씨)의 흔적과 국내에서 알려진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다른 영화, 더 랍스터의 엔딩과 교집합을 이루는 것 같았다. 불편이 습관인 감독.


색깔


깨우침과 성장의 순간에 컬러로 돌변하는 화면에 이제는 익숙하다. 특히, 파란 드레스를 입은 채 다리 아래로 추락하는 장면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큰 그늘로 남았지만, 영화 말미에 밝혀지는 그녀의 이전 삶의 모습으로 비추어 보면 독의 색깔로 생명을 품은 그녀의 결정은 타당하다.


백지


아기는 태어날 때 비어있는 백지(Tabula rasa, Blank slate)라는 인식론에 근거한 흐름에 조금 당황했다. 아기의 두뇌로 태어나 환경으로 인해 지적 인간으로 길러지는 결론이 다소 지나치게 이상적이라 생각했다.


빈민촌의 죽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감정, 도와주려는 마음의 어리숙한 행동 등은 정치적인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민중에 대한 길들임, 우매함을 상징한다.


본능


성에 눈을 뜨고 변화무쌍한 쾌락을 느끼며 그것을 삶의 에너지로 쓰며 성장해 나갈 수 있다면 그건 매춘이 아니라 천직인 거다. 내가 배우며 가르치며 기쁨의 순간들을 안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性)이란 생각하는 그 사람의 머리 안에서 그 한계를 갖게 된다. 더럽고 부끄럽다고 생각한다면 성(性)을 그렇게 다루며 살아온 거다. 성(性)은 중성적이며 떳떳하며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성장


언어, 식욕, 학습, 지식, 인간으로의 성장을 보여준다. 언어와 함께 사고도 같이 성장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본다. 말을 하고 역겨운 것을 뱉어내며 신음하고 불평하고 처한 환경 내에서 배우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마구 토해내던 아이의 표정을 읽는다.


지식인들과 책을 접하면서 점차 평온해지고 세상과 자신을 깨달아가는 성숙한 어른의 표정을 아이의 그것과 비교하게 된다. 하나씩 깨달을 때마다 눈과 얼굴이 환해지고 고개가 들려지는 기쁨이 잘 표현되고 있었다.


체제


같은 직업의 토이넷과의 관계는 세상의 수많은 관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녀로부터 사회주의를 안내받아 다른 체제를 익히는 것은 감독의 정치적 메시지와 무관하지 않다.


현 자본주의의 폐해에 절어 살면서도 꾸준히 관망만 하는 비겁한 지도자들 덕에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이런 소극적 지적들을 한다. 예술 또한 빈익빈 부익부가 심한 곳이다. 분배가 형평성 있게 이루어지는 세상이 과연 올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한다.


균열


가여운 것들(Poor things)로 대변되는 거의 모든 인물들과 환경들은 겉보기에 멀쩡해도 아슬아슬한 균열을 품고 있다. 성에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던컨도 이전 또는 현재의 남편이라 주장하는 알피도 비루하고 추한 균열에 자신들조차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미쳐간다.


특히 알피의 편집증적 소유와 박탈의 광기를 그 아내 또한 가지고 있었다는 반전에 고착된 두려움의 균열을 절감하게 된다. 결국 그 정신적 파탄을 깨닫고 생명마저 포기하는 벨라의 용기에 치를 떨게 된다. 그러나 그 포기된 생명 갓윈의 손에 다시 괴물로 태어다. 결국 그 가여운 생명의 균열은 해피엔딩이라는 가면을 쓰고 싶어 한다.


엔딩


환하게 바랜 빛처럼 처리되는 엔딩은 해피한가. 벨라의 표정과 미소가 그 어느 때보다 환하다. 결혼이든 약혼이든 그 어떤 결속과도 상관없이 그 현재를 받아들이는, 동지 같은 맥스의 단단한 표정이 오래 남았다. 세상에 없는 또는 없을 캐릭터다.


반반 형체의 동물들, 염소-알피의 풀 뜯어먹는 소리와 표정이 끝없는 불편을 예고하고 있으며, 펠리시티가 제대로 공을 받는 모습에서 희망보다는 실험이 계속되리라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 먼 해피엔딩을 향하는 불안하고도 새로운 시작이다.



한 영화다. 성(性)이 성장과 이어지는 담론이 되면 좋겠다.


사진 - POOR THINGS from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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