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 최재천 교수와 안희경 저널리스트의 2021년 4월 ~ 2022년 1월 사이 대담을 기초로 만든 책입니다.
p.96-97 사이 간지의 귀한 메시지
너무 바쁘게 생각할 시간도 없이 돌아가는 삶에서, 우리는 얼마나 진실하게 홀로 있는가. 우리 아이들은 홀로 있을 때 생각이 자란다(p.94)는 메시지와 함께 '혼자서 몰입하는 시간이 창의력을 만든다'는 긍정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의 말을 전해줍니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혼자 시간을 믿지 못하고, 창의력의 입구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재천 교수는 스스로의 여유 속에 자신의 길을 찾았습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열정을 바쳤던 것입니다.
대학원을 들어갈 때의 지도교수에 대한 고민과 갈등, 그 착잡함을 공감할 수 있었어요. 사실 그는 대학 이름을 쫓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우리 사회는 그의 통섭의 메시지를 지나칠 뿐,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실제 실현 가능성이 없다 해도, 교육부를 없애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가져봤다면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저 또한 교육부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최재천 교수 또한 교육부를 없애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공고육이 제대로 서고, 사교육이 전문적으로 필요한 부분에서 받쳐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어른들은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최재천 교수는 앞으로는 대학이 을이 될 거라 하지요. 아이들이 많이 없으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학과는 다른 대학 문화가 자리 잡을 거라는 거예요. 용기 있는 어른만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자유를 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안달하지 않아도 아이는 결국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게 됩니다.
공교육-사교육이 서로 탓만 하고 싸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육부에서 중심 추를 잘 잡아 주었으면 해요. 공교육이 아이들의 인성과 진로 방향을 잡는 활동들, 사고하는 능력, 창의력, 상상력을 제대로 잡아 주어서 아이들 스스로의 필요성에 맞추어 학원과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요.
사교육은 학교에서 뒤처지는 과목을 복습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 필요에 의해 더 깊이 있게 배우는 곳으로 자리 잡으면 어떨까요. 아이들에게 종종 그런 말을 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삶의 기초이니 제대로 배우고, 학원에는 더 많이 깊게 신나게 배우러 오는 거야.
여전히 현실은 녹록지 않지요. 학교에서 자고 왔다는 아이들이 수두룩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무시하면서, 학교 시험은 잘 보고 싶고, 학원에서 다 배우니 따로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학교 선생님도 있는 현실이니까요. 어른도 아이도 스스로의 시간과 관계에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저에게 최재천 교수님은 어떤 의미일까 가만 생각해 봅니다. 삶의 공통분모에 웃음을 짓다가도, 문득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질 때, 저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지지대 같은 분이에요.
20년도 넘은 훨씬 전부터 생태학에 관심이 있던 저는 2002년 세계 생태학 대회에서 최재천 교수님을 처음으로 직접 뵈었습니다. 기조연설자였던 박경리 선생에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시는 모습에 울컥했었어요. 존경과 진심이 저런 거구나 그냥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 한 편에서 아이 앞에 꿇고 눈높이를 맞추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다시 그 이십 년 전 모습이 오버랩되며 진심으로 사는 게 이런 게 아닐까 혼자서 또 감동합니다. 맞습니다. 아는 것은 사랑으로 이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