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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pr 02. 2024

털 없는 원숭이

[책]  by 데스몬드 모리스 저, 김석희 역, 1991, 정신세계사

부제 - 동물학적 인간론


데스몬드 모리스가 1967년에 펴낸 책이다. 우리나라에 1991년에 나온 초판으로 20년 만에 다시 읽는다. 2020년에 50주년 기념판(문예춘추사)과 내용과 번역자가 같다. 데스몬드 모리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와 친구 사이다. 이 털 없는 원숭이 내용 중에도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문구, 겹치는 부분이 있다.


p.172의 '자연의 이빨과 발톱은 붉다'라는 표현은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1장의 'nature red in tooth and claw'와 같은 내용이다. 육식동물들의 먹잇감 사냥과 관련된 치열함 잔인함을 나타낸 말이다. 번역본으로 읽으면서도 오버랩되는 표현들이 연결되니 신기했다.


중복되는 현상은 이기적 유전자의 밈(memes, 11장)의 문화의 세대 간 전달이 이 책에서도 비슷하게 묘사되는 부분이 있다. p.196에 '창조적인 작업을 했을 때, 우리는 그 작업을 통하여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다'는 지점이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의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 


이기적 유전자 초판이 1976년이니까 도킨스 씨는 친구인 데스몬드 모리스에게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을 독자인 내가 알아챘다는 거다. 소소한 즐거움이다.


목차 및 키워드 요약


제1장 기원 - origins  숲을 벗어나자 더위를 식혀야 해서 털이 없을 가능성  

제2장 짝짓기 - sex  성적 반응, 행위, 기간, 자세, 성을 위한 신체의 세부 특성, 관습

제3장 기르기 - rearing 신체, 행동, 심리적 발달

제4장 모험심 - exploraion  사회적 접촉 기술과 연결되는 탐구, 호기심, 놀이 집단

제5장 싸움 - fighting 공격/항복 행동, 계급제도, 감정에 따른 신체 변화, 전이 현상

제6장 먹기 - feeding 육식동물과 영장류의 공복 시간 차이, 달콤한 것의 유혹

제7장 몸손질 - comfort  사교성, 말하기의 4종류, 청결, 체온 유지

제8장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 - animals 먹이, 공생자, 경쟁자, 기생충, 약탈자의 관계


특히 흥미로웠던 4장과 5장


4장 모험심과 5장 싸움에 포스트잇을 집중적으로 붙여 놓은 걸 보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장에서 다룬 부분에 대한 관심은 상식적인 수준 이상으로 나 스스로 크게 가져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끌림은 창의성과 호기심으로 연결된다. 어린아이 때부터 간직해 온 창의성과 호기심이 여전히 살아있는 어른들이 진보를 만들어내고 세상을 확장시킨다. 이러한 모험심이 없다면 세상은 지루하고 밋밋한 곳이 될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창의성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놀이, 춤, 음악, 목소리 등 인간의 창의성은 어디에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4장에서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은 어린 시절의 사회적 놀이이다. 어린아이들의 발달 과정에서 놀이 그룹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양육 과정도 두 단계를 갖는다. 초기 내향적인 단계, 즉 엄마에게 사랑과 보호를 받는 것이다. 후기 외향적인 단계는 아이를 외부 세상과 어울리게 하는 사회적인 단계를 말한다. 어느 단계든 제대로 충분하게 경험하지 않으면 나중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하고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부분은 이전에 읽었던 애착장애로서의 중독(필립 플로레스, 2010, NUN)을 다시 들추게 만들었다. 아이 생 후 3년간의 중요 발달 시기에 정서적, 환경적인 결핍은 성인기의 중독이나 반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경향과 싫어하는 경향을 균형 있게 지켜내야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깊이 깨닫는다.


싸움을 주제로 한 5장은 영장류로서나 현재에도 일상 속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승자가 패자를 다루는 방법, 더 구체적으로는 공격을 가장할 때의 신체 변화나 항복할 때의 비굴한 몸짓등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간의 싸움과 그 균형의 중요함을 알려준다.


이 둘 간의 상반되는 기능의 균형을 잡지 못해서 나타나는 갈등과 불안은 전이활동으로 표출된다고 한다. 사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실생활에서 느끼는 점이기도 하다.


내가 너무 엄하게 할 때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비아냥거리며 대들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사과를 하는 아이도 있고, 잔소리를 하면 허벅지를 긴 손톱으로 큰 소리가 나도록 반복하여 긁는 아이도 있다. 이것들이 일종의 전이 활동이겠지. 평화롭지만 신나는 분위기에서 내적 싸움의 긴장 없는 수업을 하고 싶다.


모험심이나 싸움이나 모두 내적 균형 외적 균형이 잘 이루어져야 인간으로서 기능을 잘하게 될 것이다. 나는 새로운 것에 겁 없는 사람이라 위험에 간혹 빠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것이 사는 에너지이니 그렇게 산다. 지루하지 않다. 나의 인생 모토는 Helen Keller의 명언이다.


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 Helen Keller


싸움은 되도록 끝까지 피하려 하지만, 한번 싸움이 일어나면 끝까지 간다. 촘촘하게 논리적으로 질문하는 방식이다. 가만히 포커페이스로. 대부분은 상대를 제압하지만, 가끔 내 모순의 덫에 걸리기도 한다. 그럴 땐 어떻게 하나? 뭘 어떻게 해?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다. 단순하게 살자.



털 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판

같이 읽으면 더 재미있는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by 리처드 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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