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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pr 10. 2024

아카시아 꽃을 기다리며

명희 할머니의 향기

2월에 태어났지만 나는 너무 작고 약한 데다 병치레가 잦아 7살에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엄마도 건강이 안 좋으셔서 학교 끝나면 정문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명희 할머니를 따라 그 댁에서 저녁까지 보내곤 했다.


급식으로 받은 작은 식빵을 껍데기만 싹 떼어먹고 폭신하고 하얀 속살을 할머니께 드리면 이가 약하신 할머니께서 맛나게 드셨다. 그런 날은 급식 빵을 남겨 아빠에게 혼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숙제도 하고 쫑알거리며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낱낱이 고해바치면 할머니는 순하게 웃으시며 귀 기울이시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했다.


아카시아 향이 진할 때 집으로 가는 지름길인 산길에서는 더 신이 났었다. 하얀 아카시아 꽃이 산에 가득 피어 그 향기에 취해 나무 아래 팔을 벌리고 서있으면 마치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카시아 꽃이 피어있을 때는 항상 할머니께서 이파리가 양쪽으로 동글동글 나란히 붙은 작은 가지 몇 개를 꺾으셔서 주르륵 이파리를 훑어 내시고는 가느다란 그 가지를 접어 내 머리카락을 말아 주셨다. 향기가 가득한 길가에 앉아 할머니께 머리를 맡기고 꾸벅꾸벅 졸곤 했던 행복한 기억들.


얼마쯤 지나 가지를 풀고 나면 머리카락이 파마한 것처럼 꼬불꼬불했다. 어린 나의 눈에도 예쁘고 신기해서 집에 가서 엄마에게 자랑하려고 꼬불한 머리가 풀어질까 봐 살살 걸어가곤 했다.


아카시아 꽃향기는 내게 명희 할머니의 고운 미소다. 명희 할머니의 손길이다. 곧 5월이 온다. 4월 뒤에 진한 향기로 올 아카시아 꽃을 기다린다. 푹 익은 사랑을 듬뿍 주시던 할머니 품이 어른이 된 지금도 기억 속에 따뜻하다.


작디작았던 나를 사랑의 향기로 돌봐주셨던 명희 할머님 덕분에 지금을 잘 살고 있다.



#라라크루 #라라라라이팅 화요 글쓰기 주제인 '꽃'은 아주 오래전 나를 돌봐주시던 할머니 기억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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