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하다는 말 뒤에 숨은 결핍과 상처가 눈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색깔의 음식 곳곳에 새겨있다. 옥탑방 정원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그녀를 본다. 저 하늘과 맞닿은 곳에 그녀의 요리 재료들이 풍성하다.
이혜미의 글은 은밀하게 불탄다. 시인이 요리를 좋아하는 건 그녀의 시어 속의 흔적들을 다시 꺼내 재배치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향을 볼모 삼아 지금을 가둘 수 있겠지'의 주인공 음식 재료 '달래'를 소개하는 그녀는 이렇게 새긴다.
방향을 모르는 맹목과 무모한 뜨거움들은 유약한 마음을 더 깊은 곳으로 도망하게 만든다(p.20).
그녀의 요리는 귀에 대고 속삭이는 연인의 온기다.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아도 눈물을 쏟으며 매료되고 귀를 간지럽히며 애타게 한다. 그녀가 하고 싶은 욕망들이 불투명하게 누워있다, 접시 바닥에.
이혜미의 '가지'는 어둠으로 빛을 감싸 매끈하게 묶어둔 일인용 우울(p.154)이며 잘 묵혀둔 비참이나 안으로 곪아 터진 어혈도 '가지'와 닮았다(p.157)고 쓴다. 가지의 진한 보라의 무거운 신비를 그녀는 우울이라 한다. 비참이나 어혈이라 한다. 이 쯤되면 이혜미의 글은 가슴을 후벼 움켜쥐고 있게 한다.
요리책이니? 아니, 나는 아픈 사랑을 다른 방향에, 그 요리 따위에 고백하는 책인 거 같아. 아니, 나는 갈망하는 손짓을 요리에 묻는 장례식 기록이라 부를 거야. 진하고 아프고 안타깝다.
질척한 진눈깨비 같은, 하지만 그런 어둠과 무게가 갖가지 색깔을 품은 요리 안에 그 맛을 가장 잘 느끼도록 배치되어 있다. 다른 눈으로 이혜미의 요리가 다가온다. 식도의 한 켠으로만 은밀히 삼켜야 할 것 같은 그녀의 요리들.
게다가 요리 재료가 품은 이야기들도 조근조근 들어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독이 든 마녀의 열매로 여겨졌다는 '가지, ' 아마도 가지를 다시 보게 될 때 나는 매우 낯설게 가지 주위를 빙빙 돌아다닐 것만 같다.
사랑은 안키모 같네요(p.122-3)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 앞에서 화내고 어르고 달래고 부탁하다 안으로 삭아들어 무르게 고여드는 응어리가 있다.' (p.120, 사랑은 안키모 같네요 中) 다 타버려 재로 남을 정도의 사랑을 해본 사람들이나 했을 생각을 그녀가 한다. 이혜미는 사랑을 해봤을까.
그런 동떨어진 충격을 주는 이혜미의 센슈얼 요리 에세이집이다. 그녀가 했던 요리들을 마주하면 꽤 오랫동안 바라만 볼 것 같다.
'식탁 위의 고백들'
고백들마다 마음을 자극하는 향신료가 가득하다.
매일 그녀의 요리를 주문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