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스포일러는 없다]
Evil Does NOT Exist.
사색(思索)에 도전했다가 사색(死色)이 되었다.
우리는 NOT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지금 그런 세상에 산다.
12세도 볼 수 있다는 영화다. 내가 12세였다면 이 영화를 보고 뭐라고 했을까? '사슴이 불쌍해.' 정도였을까? 어쩌면 아이가 뱉을 법한 그 한 마디가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12세가 아니었으며 다만, NOT을 기억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은 명확하다.
영화가 끝날 무렵, '오, 제발, 내게 시간을... 줘!' 가차 없이 뚝! 끊어가 버린다. 모호하고 뭉툭해진 류스케에 깜짝 놀란다.
무심히 아무렇게나 제목을 지었다는 감독의 역설을 읽어야 한다는 것, 세상은 호락하지 않다.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한 가지 'NOT'이다. 나의 착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순결한 글자들 사이에서 단 한자, NOT만이 붉은 피를 흘리며 돋구어지고 있었다. 최종 메시지, 핵심으로 읽혔다.
대문자였는지 소문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불편하게 몸을 불려 포식자 앞에서 떨고 있는 먹잇감처럼 부풀린 대문자로 각인되었다. 성게의 뻗친 가시들처럼 어느 방향을 보아도 얘기 거리는 풍성하다. 모호하고 급작스럽고 덜컥 전환되고 억지로 바라봐야 해서 현기증 나는 장면들과 생각들로 엉켜버린 시간들이다.
나무와 하늘은 수평인가 수직인가, 그럼 공기는? 땅은? 발붙이고 사는 인간과 자연은 섞이는가 이물스러운가 아이는 어른들의 희생양인가 자연의 복수 대체물인가. 도시의 욕심도 시골의 이방인도 젖을 주는 자연도 가시에 걸린 핏방울도 이 NOT의 위협을 기억해야 하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오직 아이들만이 꽃을 피우기 위해 멈출 줄 안다.
NOT의 붉은 균열과 이물감을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악(惡)'이다. 악은 존재한다, 도처에, 이 NOT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면.
그가 마지막 보루로 놓고 간 낫(NOT)을 어떻게 쓸 것인가. 낫을 들고 무장봉기라도 해야 할까 보다.
사색(思索)이 사색(死色)이 되었다.
Evil Does NOT Exist.
NOT이 없으면 악(惡)의 존재가 강조된다는 것을 기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