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Apr 15. 2024

누구도 몰라

[영화] 우연과 상상 by  하마구치 류스케

우연은 쌓이고 쌓이다 방향을 잃고 헤매다 다시 쌓인다. 그중 어떤 하나를 선택하면 그 길 따라 낯선 우연이 다시 시작되는 거다. 좋은 나쁜 좋은 나쁜 좋군으로 마무리하는 건 아무래도 류스케의 규정인가 보다. 지루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조미'로 끝나지만 거기서 시작인 게 우연이고 거기서 위안받고 싶은 게 사람이고 그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상처라는 거다. 꼭 뒤집어 해갈해야 하나. 머무는 대로 시간이 온다. 찾아다니며 푸는 사람들. 시시하다.




내가 동식물 분류표를 모두 외워 답안 작성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교수는 나를 기억해내지 못했을 것이고 내가 기말페이퍼를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그럴 리 없다고 A+을 주지는 않았을 거다. 술수가 아닌 개인적 좌절과 포기였는데 A+을 받아 들고 얼마나 당황했던가. 교수 평가 시스템 뒤집으러 찾아갔다가 그냥 넘어가달란 애원을 마주한 후...




내 삶의 철학을 고수하고자 성적 변경 신청서를 내자 조교가 학교 본부로 불려 갔다. 조교는 자신이 한 채점이 아니므로 교수의 이름을 알려줘야 했다. 교수는 뒤에 앉아 어떻게든 조교를 통해 무마시키려고 했으나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교수는 경위서를 쓰고, 윤리 위원회에 회부되어 그 깟 자기가 했어야 할 학생 평가 따위에 신중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자아 비판하듯 변명과 사과를 토해야 했다. 위원회 결과는 삽시간에 학교에 수군거림으로 퍼지고 교수는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할 길 없어 한 학기 병가를 냈다.


쪼끄만 여학생 하나랑 다시 마주하기 싫어 병가를 낸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엉덩이 종기가 갑자기 스트레스로 활활 늘어나 수술을 하게 되었다며 동료들의 이상한 눈길을 피 학교를 돌아 나왔다. 수술은 무슨!


손이 닿지도 않는 엉덩이 끝자락을 아내에게 내밀며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속이 풀릴 것 같다고 한탄하며 승낙을 받아냈다. 엉덩이 종기 짠 자리가 쓰라려 넓은 좌석에 앉아야 하니 비즈니스 좌석을 예약해 달라 아내에게 쉬렉 고양이 눈으로 애원해서 얻은 큰 자리가 편안한데 옆 좌석의 묘령의 아낙네가 흐느끼며 울고 있다.


어색하게 손수건을 건네주다 눈이 마주쳤는데... 이 뜨거움은 뭔가! 한국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겁나 강한 예감이 들면서 아낙네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엄지 손가락으로 천천히 다독여 내렸다. 아...




나는 교수의 애원에 갑자기 무책임의 찌질함과 함께 생계의 처절함을 느꼈다. A+ 학점을 땅에 그냥 묻기로 하고 교수실을 돌아서 나오는데 왠지 A+을 받은 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내 결벽증의 상처로 남아 한동안 우울했다.


그 후 나는, 다시는 그 따위 종류의 A+을 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 하고 싶은 공부는 쭈욱 A+로, 하기 싫은 과목은 일관성 있게 바닥에 안정적으로 다스렸다.




류스케씨 어때? 갑자기 생각 난 내 삶의 우연상상, 이런 거 맞지?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 비밀 I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