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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pr 26. 2024

새벽 여울목

새로운 벽을 두드리다, 새벽!

새벽, 산소의 숲에서 피톤치드에 샤워한다. 새소리 물소리만 가득한 곳에 들어와 내 발소리가 방해될까 봐 흙길을 가만가만 걷는다. 가슴을 최고로 부풀려 새벽바람을 더 넣으려고 아주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눈을 감고 숲이 나의 폐포 하나하나를 울리고 지나가는 순간들에 집중한다.


이 기쁜 곳,

물소리 맑은 숲길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숲에 도착했지만 온 세상이 뿌옇게 회색으로 흔들리고 있다. 저 깊은 속 어디엔가 해가 불을 품고 들어앉아 있을 테지만 기척조차 내지 않는다. 대체 어떤 꿍꿍이일까.  한참을 바라보다 숲을 걸었다. 새소리의 다름이 어떤 의미의 다름인지 너무도 궁금하지만 그저 내게 닿는 경쾌함으로 그들도 신나는 것이리라 담아둔다.


숲을 마주한 설렘이 시원한 바람이 되었다가 다시 물소리로 마음을 흔든다. 울목을 바라보며 더 단단해지리라, 더 담담해지리라, 더 진하게 살리라 다짐한다. 좋은 것을 보면 바라보며 다짐하는 게 습관다. 좋은 것들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수많은 네게도 수많은 내게도.


자연의 소리만이 오롯한 곳, 나의 숨소리조차 허락되지 않을 것 같은 고요함 속에서 고개를 숙다. 푹신한 흙이 내 거슬리는 소리를 묻는다.



자연은 가만히 자신일 줄 안다. 나도 가만히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겸손하게 살라고 다독이는 새벽이 좋다.


매일 만나는 새로운 벽, 그걸 새벽이라 부르겠다. 매일 만나는 새로운 막막함, 그걸 잘 두드리며 귀 기울이며 살아야지.


당황과 문득, 갑작스럽고 대범한 선택의 조합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 마음이었다. 불투명하게 시작한 여행답게 산을 통째로 넘는 구불거리는 길에서 손이 떨렸다. 가로등도 없는 칠흑 같은 길, 어찌 되었든 빠져나가야 빛을 볼 수 있는 인생과도 닮았다. 그런 곳에서 익숙함이란 없다.


새벽안개가 얼굴에 질척거린다. 시원하게 닿는 미세한 물기가 마치 나를 소독하는 것 같았다. 숲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그제야 해가 저 위에 둥글다. 안개는 태양마저도 뿌옇게 만든다. 선블록 크림을 두껍게 바른 듯한 태양을 바라보며 오늘은 마음이 덜 타는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자연을 마주하고 온 날은 경건해진다.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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