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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25. 2024

선택부적응

0683

마음이라는 상호가 들어있는 병원을 지나고 나면 숲속이라는 상호가 들어있는 상점을 지나게 되고 비로소 재료부터 방법까지 주문하는 식당이 있다.


선택은 자유롭다는 느낌을 주지만 취향이 특별히 유난하지 않을 때에는 자유롭지 못하게 느껴진다.


결정장애보다 선택부적응에 가깝다.


잘 고르는 것도 잘 겪어낸 이들의 몫이다.


좋아서 고르는 편보다 좋지 않아서 솎아내는 편이 선택의 흔한 요령이다.


이것이 좋아서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그 주위의 미진한 것들을 잘 버리는 일에 집중하니 선택은 항상 비교라는 지옥을 통과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잘 선택하기 위해 모으는 실패의 답안지들이 아닐까.


늘 돌아보면 빈틈투성이인 선택지들을 매만지며 다짐하지만 다시 주어진 조건에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불안은 어쩔 수 없다.



저 바위들이 말할 때까지 고민하고 싶지만

저 꽃들이 노래할 때까지 갈등하고 싶지만

세상은 서둘러 나의 멱살을 잡고 재촉한다.


초시계에 쫓겨 긴 숙고 끝에 엉뚱하게 비껴간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랜덤이 최선일 수도 있겠다.

보편이 최선일 수도 있겠다.


나는 특별하고 복잡한 존재라고 자부하더니 가장 허술하고 단순한 결정을 내리고 만다.


날마다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도 선택의 순간이 여전히 난감하고 당황스럽고 낯설다.


그래도 선택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선택을 고통이나 슬픔으로 치환해도 틀리지 않다.


결국 선택의 요령을 찾다가 선택의 미로를 지나 선택의 굴레에서 서성이다가 선택없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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