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지키며 할 수 있는 진실한 공감 전법 전술이야기이다. 다소 과격하지만 그런 전사이야기다.
표지 주위만 빙빙 돌다가 문득 읽게 된 책, 열면서 하루 만에 후딱 읽을 수 있겠다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나의 심연에 가라앉은 외로움과 꺼내기 싫은 불안에 대해 생각해야 했고, 공감 전략 전술이 나올 때마다 가상의 내가 뛰어다니며 다독일 어깨를 찾아다니곤 했다.
자기를 편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다!
감정에 충실한 삶, 기쁠 때 충실하게 기뻐하고, 우울할 때 내가 이렇게 우울하구나, 내 앞에 이렇게 꽉 막힌 벽이 있구나, 이런 우울을, 약이 필요한 병이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색깔이라고 위로한다. 여기서부터 나는 이 책을 놓지 못하고 진도도 안 나가면서 페이지마다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존재를 들여다보라는 거다.
때로는 관계를 끊는 선택이 옳을 때가 있다!
대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관계에서 멀어지면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는 양, 얼마나 노심초사하는가. 그러나 때로는 관계를 끊는 것이 불가피할 때가 있다. 애써 부인하면서 살아온 명제다. 속 시원하다!
초연해질만큼의 삶에도, 관계의 불편과 불안을 떠안고 사는 현실, 결국 나를 보호해야 하는 거였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합리화해도 되는 거다.
모멸감을 참으며, 다른 사람이 똑같이 겪는 것을 보며 눈물의 삼키며 보냈던 그 몇 개월이 참 바보같이 나를 지켜내지 못했던 거였다. 다행히, 끊기 기술을 걸어두고 불편하고 분노한 마음이 있었는데, 불편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그러나 다시 마주치니 흐려졌던 불편함에 당황하는 나, 약한 인간이다.
나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어야 하는 거다!
회사의 상사든 단체의 리더든, 왜 내가 그 사람을 맞춰주기 위해 시시각각 변해야 하는가. 계속 만나면서 살아야 한다면 더더욱 삶의 중심은 자기에서 있어야 하는 거다. 끝내 자기 보호가 되지 않고 위태롭고 불안하다면 삶은 얼마나 살얼음판이 될까. 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질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잘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아 할까. (p.205)" 질문의 중심은 바로 나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다른 말은, 의외로 폭력적인 '바른말'이다!
이 폭력적인 바른말들은 공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것들이 빠른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효과는 높지 않다. 마음을 닫게 만드는 말들 이기도 하다. 문제는 말이야, 그건 이렇게 해, 네 타입은 이게 딱이야, 너만 힘들지는 않아, 그래도 힘내야지, 사는 게 별거니...
가만히 들어주는 게 더 나은 거다. 지금 마음이 어떤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물어봐 주는 게 나은 거다.
"계몽과 훈계의 본질은 폭력이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렇다. (p.296)"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은 '심리적 참전'이라 할 만큼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다. 당연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덜어내는 일이므로. (p.303)"
자기를 보호하면서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두 개의 세상은 하나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감정노동에 불과하다는 말이 가슴에 꽂힌다. 더 깊게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결국 다른 사람의 존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공감이다. 공감, Empat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