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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y 18. 2024

푸른 초록의 찰나

[영화] 녹색광선 by 에릭 로메르,1990

나를  이뤄가는 녹(綠), 르다고도 하는 녹색을 따라 푸르다가 초록이다가 다시 푸르게 간다. 내 눈을 따라 시간을 정해서 간다.


얼룩덜룩 불규칙하고 지루하고 토라지고 도망가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녀가 따분해 울 때 나는 그런 따분함의 과거에서 다시 울었다.


그녀가 숲에서 엉거주춤 서서 울 때 나도 다시 녀의 시간으로 돌아가 발로 흙을 헤쳐가며 징징 짰다.


에릭 로메르 다운 화에는 부루퉁하면서도 귀여운, 짜증이 종종 나는 터무니없는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 나온다. 가 나온다.


그가 나의 사람인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와 내가 서로 같은 높이로 서 있다는 걸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그를 따라가도 좋은지 절실해도 좋을지 손잡아도 되는지 떨리는 마음으로 태양을 기다린다.


엉덩이에 무늬가 선명한 원피스 수영복이나 하얗게 간신히 가렸던 비키니 수영복으로 파도를 뛰어다니면서도 떨칠 수 없는 외로움, 떫디 떫은 시간 속에 남는 건 눈물뿐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보다는 겉을 훑는데 신물 나고, 노골적인 젖가슴을 가려주고 싶지만 답답하기만 하다.


도망가다 서서 울고 찾는 게 무엇인지 몰라서 울고 사람이 그리워 울고 사랑을 찾으며 서럽다.


고개 든 곳에 머뭇거림과 당황이 책장 넘기는 손을 떨리게 한다. 호기심의 장소는 상상을 부르고 상상으로 그려진 곳에서 지는 해를 기다린다.


아아, 초록이 아니야. 푸르게 가라앉지 않으니 지겹도록 흘렸던 눈물이 다시 꾸역꾸역 올라온다. 우리는 같이 할 수 없는 걸까. 지금이 아닌 걸까.


다리를 담그고 몸을 담그고 얼굴을 지나 끝까지 담글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아야 하는 거다. 너무 간절해서 먼저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환호하는 그녀를 따라 나도 소리를 지른다.


네가 다가온다. 르른 녹색을 따라 그 찰나의 빛을 따라 이제 나는 네게 간다.


나는 초록빛으로 너를 본다.

너는 푸른빛으로 내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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