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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y 28. 2024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책] 이강용 저, 2014, 유유

어떤 출판사는 망설이지 않고 책을 집어 들게 한다. 




번역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한국어 표현을 섬세하게 익히는 것(p.10)이라는 데 공감하며 번역뿐 아니라 글을 쓰는데도 도움을 많이 받는다. 한국어를 하면서도 언제나 갈증이다. 사전을 뒤지며 항상 모자라단 느낌에 좌절하고 다시 고개 숙이며 근근이 글을 쓰고 있다. 


제목은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라고 되어 있지만 이 책 또한 언어의 기본 기능인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말하기와 쓰기에서의 상호 이해, 즉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의 소통에서도 이해를 위한 번역과 해석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언어와 관련한 다양한 공부와 일을 하며 언제나 부딪혔던 건 한국어 표현력 부족이었다. 번역도 통역도 각 장르마다 또 시간과 장소에 따라 모두 다르니 그에 따른 언어의 선택도 다양해야 이해의 폭이 넓다. 


자연과학 실험 연구 논문의 건조하고 딱딱한 전문 용어, 각 나라의 예술 문화를 전할 때의 언어의 융통성을 접하며 더 나은 표현을 위한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었지만 향상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하지 못했다. 


공부하면서 받은 가장 자존심 상했던 피드백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에 비해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매우 어색하다는 것이었다. 그땐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몰라 불안하게 마친 과목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보았던 부분은 명료한 주제 만들기와 출처와 근거를 정확하고 충분하게 구성하는 것이다. 빗나간 주제의 신문 기사가 주는 영향, 정확하지 못한 출처와 충분한 근거 없이 쓰인 글에 대한 예를 읽으며 지금까지 내가 썼던 글을 상기하며 겁이 더럭 났다. 쓴 글을 하나씩 되돌아보며 반성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맥락을 살피는 것이다. 맥락을 살피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니 보통 대충 추측한 대로 쓰기 십상이다. 한번 잘못 나온 말이나 글은 되돌릴 수 없다. 수정해도 흔적은 남는다. 최소한 말을 하거나 글을 쓴 당사자는 그 남은 상처를 안다.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많이 하는 수정 요청 사항이 군더더기를 없애고 문장의 격을 맞추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언급하는 문장의 격과 관련한 여러 예들을 온전히 이해했는지 불안하다.  


특히 비유적인 표현이 있는 '노동이 밀려난 공간만큼 자본의 하수구가 들어와 불평등의 폐수를 방류한다.' (p.154)는 표현에서 '하수구'와 '폐수'를 동격으로 처리하여, '노동이 밀려난 공간에 자본이라는 하수구가 유입되어 불평등이라는 폐수를 방류한다.'로 고쳐야 한다는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문장 모두 같은 의미라고 생각했고 달라진 문장이 이해하기 쉽게 수정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이미 읽은 페이지에서 저자가 쓴 말이 다시 생각났다. 


대강 알아들으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의 인생은 회화 수준에 머물지만, 섬세하게 마음을 주고받고자 노력하는 이의 삶은 대화 수준으로 고양된다(p.98).


나는 이 말도 공감하기 힘들었다. 국어대사전에서 회화와 대화의 의미를 찾아봤지만 왜 이 둘이 양극으로 수준이 나누어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섬세하게 마음을 주고받고자 노력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실상은 회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말인가.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한 가슴 철렁함이 이 글의 이해를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영어 두자어에 대한 한국어 표기에서도 'CD가 하던 역할을 MP3이 대체하고 있다.'(181쪽)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부분은 저자가 세운 일관적인 규칙에는 들어있겠으나 일반적인 대중이 이해하는 바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조사 '이'가 붙었다는 것은 MP3을 '엠피삼'이라고 읽으라는 것인데 엠피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을 부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장 다듬기, 문법 지식 갖추기에 대한 구체적인 요령들은 꾸준히 반복하며 일관성 있는 규칙으로 만들어 두면 좋을 것이다. 


관형격 조사 '~의'에 대한 적절한 쓰임과 의존 명사와 조사를 구분하지 못해 일어나는 오류에 대한 부분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꼭 숙지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오류를 모으며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던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그 예와 명료한 설명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성실하고 세심하고 정확하게 진심을 담아 글을 쓰는 일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한 진리를 알려주는 책이기에 소중하다. 


이 책의 저자는 책임감이 부족하거나 실없는 글에 많이 나타나는 표현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 나름대로, 아마도, 아무튼, ~기 마련이다, 항상, 어디서나, 무엇이든, 모든, 다 마찬가지, 가장 뛰어난, 가장 효과적인, 가장 훌륭한, 내 생애 최고의... (p.44-53)


사실, 가만히 살펴보니 지금까지의 나는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써왔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아무튼 내 글은 솔직히 말해서 엄청 실없다. 이강용에 의하면.




빌린 책 속에는 네 잎 클로버 두 개가 꽂혀있었다. 행운이? 또는 행복이? 두 배로 온다는 것인가 보다. 그대로 꽂아서 도서관에 반납했다.



▣ 추가 들여다 볼만한 자료: 이강용 홈페이지 - 생각보다 젊어서 깜짝 놀랐다! 책 읽는 내내 훈계하기 좋아하는 꼰대일 거란 편견을 가졌나 보다. 홈에 흥미로운 자료들이 많다. Know, K 묵음의 기원 (03:51), 목소리 ok. / 책 미리보기 by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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