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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y 27. 2024

싱클레어의 숨

[책] Demian p.76, Hermann Hesse

Fischer Verlag 1925, Harper & Row 1965, Holt, Rinehart & Winston 1948(Thomas Mann's Introduction), & PERENNIAL LIBRARY 1989, 숫자에 박힌 권리를 읽는다. 욕망을 읽는다.


뭔가 나를 도지게 하는 것은 눈을 크게 뜨게 한다. 눈의 통증으로 관자놀이를 잡게 하는 힘,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르는 수많은 숫자들의 잔치가 아니라 그들을 열었을 때 내가 받는 철렁함이다. 내게 오는 뜨거운 울컥거림이다.


'왜 그 따위로 글을 쓰는 거야!'


발행을 누르고 나면 맞춤법 수정이나 한 줄 피드백의 칼날을 마주하는 건 이제 즐거움이 되었다. 글을 쓰며 매조히스트가 되고 있다.


대답은 항상 같다.  


'숨은 그림(hidden pictures)'을 찾는 사람끼리 진해지는 거야. '숨(breath)'은 조각(pieces)을 찾는 사람끼리 통하는 거라고!




감흥 없이 벽돌 쌓기를 하던 인스타그램의 첫 페이지 중간에 이빨이 빠진 걸 알게 되자 집착이 시작된다. 


내게 무시당하는 기계나 컴퓨터나 AI가 버그를 끼고 산다는 걸 잊고 살다가, 저 화면 안쪽에 습자지 같은 날개를 깔고 드러누워 때가 잔뜩 낀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벌레 한 마리를 본다. 


내가 쓴 글은 어디 있니? 내가 올린 사진은 어디 두었어? 핵심이 없으면 올리지나 말지 하얗게 흔적은 왜 남겨 두었어? 날개 속 습한 구석에 묻어 두기라도 했어? 




베아트리체를 만나기 전 싱클레어의 방황과 고독을 읽고 쓰고 있다. 추한 내면에 괴로워하며 끊임없이 갈증하며 뭔가를 그리워하는 싱클레어가 가여워 닿지 않는 손을 서로를 향해 뻗으며 다가가고 있었다. 감정이 마주치는 곳에서 단어를 꺼내 기록해 둔다. 


intense longing... a hopeless longing

격렬한 갈망... 그 끔찍한 그리움


인스타그램은 '그 끔찍한 그리움'을 꿀꺽 삼키고는 내놓지 않았다. 내가 그를 향해 바친 조공인걸 알아채고 마치 그가 자기인 줄 착각하고는 혼자서 그 그리움을 뜯어먹고 있나 보다. 너도 멀미가 심하구나.


'이미지를 로드할 수 없음. 다시 시도하려면 누르세요.'


나의 이미지와 그의 이미지가 다른데 무엇을 더 시도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미 과거 내가 쌓은 이미지는 휘발하고 버그가 잡고 있는 이미지는 어딘가 사이버 구역의 죄수가 되었다. 지금 그 이미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사이버의 무기수로 자유로운 버그가 되기를.


그렇게 같이 헐떡거리던 싱클레어의 한 줄기 숨은 사이버의 떠돌이로 그 끔찍한 그리움을 안고 날아다닐 것이다. 내가 마주하던 싱클레어의 고뇌와 고독이 조금은 가벼워졌기를 바란다.


a hopeless longing, intense longing... 

그 끔찍한 그리움, 격렬한 갈망... 


결국은 그것 때문에 살게 되는 거 아닌가. 그게 책이든 음악이든 데미안이든 그 어떤 사람이든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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